나는 많이 살았는데

“미안하죠.
나는 많이 살았는데
내가 먼저 수술하게 되어서..”
 
희철이 어머니는 자신이 자녀보다
먼저 수술받는 것을 
힘들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희철이는 뇌성마비에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서
어머니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몇 년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몸이 불편한데다
작년에 암판정까지 받아서 
희철이를 돌보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아픈 몸을 돌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암투병중이었던 어머니가
먼저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웃을 수 있습니다.
작년, 희철이네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철이 형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46살 나이에 태어난 희철이는 뇌성마비를 앓게 되었고
그로 인한 상실로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단 둘이서 의지하고 살아가다 
갑작스레 얻게 된 암 판정과 파킨스병은 사형선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살 수 있을 것 같다 말합니다.
꿈꿀 수 없을 때 만난 인연과 도움을 통해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수술도 받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합니다.
함께 해준 분들에게 목소리를 녹음해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수술 후 몸이 많이 좋아져서
10월초에는 희철이가 수술하려 합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희철이는 
얼마전 장애인 경기인 보치아에 출전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경기 방식이지만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데
희철이 팀이 2등을 했답니다.
수술을 하고 좋아지면 전국체전에도 출전하려 합니다.
 
사실 희철이의 수술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더 좋아지라고 하는 수술이 아니라
더 안 좋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술입니다.
하지만 더 좋아지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이 가정의 회복과
이들을 향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해주세요.
 
추석을 보내면서
주변에 아픈 친구들에게 짧은 안부를 물었습니다.
꼬마 아이들에게는 카카오 선물로 맛난 치킨을 보냈지요.
 
모두 쉽지 않지만 애써 힘을 내고, 웃고 있습니다.
함께 웃으며 기도해주세요.

그냥 조금 아픈 아이

#1
성호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우리 성호 몇 살처럼 보여요?”
부로 몇 개월을 더 붙여 말했습니다.
“15개월 정도 되었나요?”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했습니다.
성호는 이제 20개월, 한국 나이로 3살입니다.
이 나이면 제법 의사표현을 하고, 뛰어 놀며 장난칠 때이지만
고작 1.4킬로로 태어난 성호는 얼굴 빼고 모든 곳에 주사를 맞으며
태어난 지 겨우 이틀만에 중환자실에서 심장수술을 했습니다.

그나마 많이 자라서 이제 신생아 모자를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목을 못 가눈채, 엄마만 알 수 있는 표현으로 웃을 뿐입니다.
눈만 껌뻑 거리는 성호를 안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병원에 오면 차라리 편하고 마음이 놓여요.
성호처럼 아픈 아이들을 보며 혼자가 아니란 생각도 들어요.
마음이 편해서인지 병원에 있으면 저도, 아이도 살이 쩌요.
병원에서는 이런 우리를 보고 부럽다는 엄마들도 많아요.

친정 엄마는 응급상황이 생길때마다 안쓰러워서 우시지만,
저는 성호를 일부러 울릴 때도 많아요.
울면 우리 아이의 폐가 좋아질 것 같아서요.
하지만 우리 성호는 워낙 순해서 응애응애 우는 게 아니라 징징 거리는 정도예요.
피를 뽑아도 울지 않아요. 그래서 안 쓰러워요.”

성호는 이제 피를 뽑으면서도 잠들 수 있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달고 있던 주사바늘에 익숙해져서 여기에 면역이라도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호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병 있는 아이’가 아니라 ‘그냥 조금 아픈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조금 아픈 아이라서 조금만 덜 아프면 좋겠다고 소원합니다.
성호가 정상적으로 걷기만 하면 어머니는 사격을 시키고 싶다며 웃습니다.
사격을 하면 귀가 멍한데, 우리 아이는 귀가 잘 안 들려서 집중도 잘 할 수 있을테니
나중에 장애인 올림픽에 보내고 싶다고 합니다.
몇 십 년 뒤에 성호의 목에 걸린 메달을 상상해 봅니다.

“임신 6개월에 제 뱃속에 있던 아기가 안 좋다는 것을 알았어요.
당시 사람들이 아이 지우라고들 말했는데
이 아이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겠어요.
이렇게 예쁜 아이인데.. 내겐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아들입니다.”

– 성호는 백질연화증, 청각장애, 뇌병변장애 1급, 다양한 경기로
그냥 조금 아픈 20개월 사내아이입니다.

#2
무경이의 그림이 완성되면, 나중에 성호도 그림 그릴까 생각합니다.

전시회 당일까지 매일 쪽잠을 자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친정에 가있는 동안 온 집에 발 디딜틈 없이 그림을 널어놓고 그림 그렸습니다.
잠 자다가 깰때마다 일어나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잠들곤 했습니다.
우스갯 소리로 작품명을 수면부족으로 지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시회가 시작되고 나니,
무경이 그림은 겨우 하나인데도 생각보다 진도가 나질 않습니다.

무경이 그림을 어떻게 그릴까 기도하며 고민했습니다.
사진과 그림의 다른 점을 생각하다가 희미하게나마 겨우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의 힘이 사실이라면, 그림의 힘은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품만 할 수 있을 뿐, 아무 표정 없는 무경이 얼굴에 작은 표정을 심어 그려주고 싶습니다.

내가 무경이의 그림을 그리고 경매에 붙여 판매하려는 이유는
판매액을 무경이 보청기 사는데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목적을 명확하게 하려는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보청기는 작게는 400만원, 많게는 천 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꼬맹이의 그림이 작품이 될 수 있다면 내 그림도 작품이 될 수 있겠지만
내 그림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풋내기가 그린 선물에 불과합니다.
내 그림을 선물로 여기면 나는 보다 부담없이 그림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다른 무엇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은 부족하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그렇게 할 뿐 입니다.

한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껏 많은 친구들을 만나왔지만, 내가  그 인생을 책임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부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담감을 서로 함께 나누는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선물 같은 그림

그림을 그리며,
그림을 그리는 분들의 애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흔히 ‘미대오빠’라고 불리는 멋져 보이는 말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지요.
현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이어간다는 말은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도구들은 또 얼마나 비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요.

그림을 그리며 나는 수많은 감사를 경험했습니다.
밤이 늦도록 작업을 하다가 재료가 떨어지면
다음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밤 11시가 넘어서도 화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잠들어야만 하는 새벽시간이 물감을 건조시킬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감을 한 번이라도 칠해 놓으면,
다음 날 다시 그림을 그릴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늦은 방에 문닫힌 화방문을 열어주신 주인분께는 죄송하지만
고르고 고른 물감들이 결국 값싼 튜브물감 몇 개에 그치곤 했습니다.
사고 싶은 물감과 붓과 재료들은 가격이 너무 높아서 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내 처지가 안되어 보였던지
주인분이 주섬주섬 몇 개를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비싼 오일스틱 몇 개와 필요했던 붓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고는 날듯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작은 일화 한토막이지만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신 분이, 모든 과정 가운데서 넉넉하게 내게 격려하셨습니다.

오늘 또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무경이는 소아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무경이의 하품하는 모습만으로 감사함을 느낄 정도입니다.
너무나 큰 절망은 이렇게 작은 일상에도 감사를 발견하게 만듭니다.
얼마전 무경이 어머니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첫 대목에서 가슴이 짠했습니다.

“..계속 받기만 해도 되는지….
지금까지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래도 도움주신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직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예의상 한 두번 거절할만한데,
그 도움을 물리치지 않고 단호히 받겠다는 글에서
어머니의 뜨거운 모성이 느껴졌습니다.
무경이는 아직까지 전혀 움직이지 못하지만
난청까지 있어서 보청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필요들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내 사진과 그림 한 두점을 경매 하는 시간도 가지려고 합니다.
선물처럼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니, 그 선물을 어떤식으로 나눌까를 매일 모색하고 있습니다.
잡지 발행 기념식 때 무경이 어머니도 초대하려고 합니다.
경매할 그림으로 오늘부터 틈틈히 무경이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는 탈북자들을 돕기 위한 전시도 가지려 합니다.
그밖에 여러가지 비밀스런 전시들도 있습니다.
오늘도 화방에서 캔버스와 물감 몇 개를 골랐습니다.
여전히 갖고 싶은 도구 대신 조금 값이 싼 것들을 골랐습니다.
하지만 기쁜 선물처럼 내 그림이 씨익 웃으며 걸어가
사방으로 악수하고 토닥거리며 위로하는 꿈을 꿉니다.
내게 그림은 선물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한 일인지요.
전혀 자격 없는 사람을 통해 이 일을 시작하셨다면 내 몫은 역시나 순종입니다.
순종을 통해, 우리의 모든 숨결속에, 일상 속에 빛이 비추어 진다면
내 그림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빛을 나눠줄 수 있겠지요..

괜찮아.

수영이의 전시회를 기다리시는 분이
많으신 것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수영이의 건강상 이유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전시회는 열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사실 전시회 뿐 아니라
이 아이의 신앙 고백이 담긴 책까지,
여러 가지를 함께 진행하고 있었는데..
아직은 때가 이른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영이의 신앙 고백이 담긴 글은
저 스스로도 무척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어서
어떤 형태로 주변의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영이의 글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 뿐 아니라
관심과 친구 혹은 동역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의 한 몸에서 떡을 떼어 나누는
성찬속에서 묵상하던 주제와도 이어집니다.
같은 공간에서 예배드리면서도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인해
외로움과 아픔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수영이의 글은 위로가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적어간 한 영혼의 진실한 고백이라면
같은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사람에게 단비가 되어주지 않을까..
연약해 보이는 한 사람의 고백이
또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는 것은

주님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신비인 것 같습니다.

#괜찮아

약함이 몹시 깊을수록

상처가 클수록 어떤 표현을 찾아야할지 모르게 되고,

그 어법과 구사는 누가 보더라도 탐탁지 않은

다소 낯선 것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그때 그들이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실은 그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실수를 연발해도

아무리 그것이 우습고 오만해보여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로

그대로의 모습을 남겨두는 자를,

당신은 그저 안아주고 보듬어주면 된다

못들은 척, 못 본척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주면 됐었다


괜찮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너를 환영한다……

 

#편지

예수님, 당신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서
당신의 가난하게 되심을 말하기 위해서
나는 영원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기억하는 것만이 외면하지 않는 일임을 가르쳐주신 아버지,
내가 영원히 당신의 길을 오르며
이웃과 친구들의 탄식이 사방을 둘러볼 때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 살아가겠습니다.

글. 홍수영

은채를 위한 기도

“남편과 함께 기도했어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고..”
정미자매가 들려준 이야기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의 응답으로
정미자매의 가정을, 그 마음을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정미자매는
넷째 딸 은채를 출산했습니다.
출산 4개월 전에 초음파를 통해
좌심실과 대동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다른 장기나 염색체에도 이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이란 생각에
출산까지 꼭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앞으로 만나게 될 광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은채는 9개월의 임신기간을 거쳐 2.15Kg으로 태어나
다행히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좌심이 기형으로 태어나서
폐에 무리가 가는 문제로 숨쉬기가 힘들어져
며칠 전 폐동맥을 묶는 1차 수술을 했습니다.
2차 수술을 하기에 은채는 아직 너무 작기도 하고
갑자기 위급상황이 오면 빠르게 조치하기 위해
가슴을 절개한 후 아직 닫지 않은 채 대기 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기도하는 이들에게
이 아픈 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신다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2Kg밖에 안 되는 이 조그만 생명이
사람들을 기도하게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많이 필요한 가정입니다.
현재 은채아빠는 세종시에서 일하느라
주말에만 가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은채의 상황을 곁에서 지켜야 하는 은채 엄마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며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어린 세 아이들은
주변의 이웃들이 돌아가며 돌봐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일 우리 첫째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둘째출산은 생각도 못했을거예요.”

은채 엄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만큼의 절망같아 보이지만
오늘 하루는 견딜만큼의 아픔인가 봅니다.
넷째이기에 견딜수 있다는 역설같은 농담에
그만 따라 웃어버렸습니다.
어느 것 하나 참아내기 힘든 현실 속에서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려 합니다.

무경이에게 반창고

무경이는 석빈이와 쌍둥이 형으로 태어났습니다.
아직 7개월 아가인데 숨도 잘 못 쉬고, 먹지도 못합니다.
무경이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함께 있는 몇 시간 동안,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습니다.
 

 

무경이가 태어났지만  이 개월 간 눈 뜬 것도 보지 못했고,
한 번 안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온 몸에 이것 저것 꽂은 게 많아서 그렇기도 했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희망을 갖지 말라고 하지만
엄마는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나 입으로 무엇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혼자서 숨 쉬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얼굴이 굳어 딱딱했습니다.
엄마는 표정 없는 무경이를 매일 같이 만져주었습니다.
그렇게 만져 주었더니 삼 주일만에 하품을 했습니다.
엄마는 하품 한 번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무경이의 엄마는 아이가 처음 하품 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너무 좋아서 그날 잠도 안 왔다고 합니다.
아이를 치료할 약도, 치료 방법도 없고
앞으로 합병증만 없으면 다행이라고 합니다.
 

 

하품을 하지만 무경이는 아무런 표정이 없습니다.
주사를 맞아도 아파한 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울었던 적도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적 일입니다.
아무 표정도 없던 무경이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간호사가 다가오자 아이의 심박동수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무경이 대신 기계가 아이의 울음을 울어준 것이겠지요.
 

 

“장기라도 이식해서 아이가 살아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이미 많이 살았으니까..”
엄마의 마음입니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자식을 살리고 싶은게 엄마의 마음입니다.
 

 

엄마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무경이의 호흡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엄마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무경이에게 향했습니다.
덕분에 동생 석빈이를 내가 맡았습니다.
그 때부터 석빈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내게 안겨 있었습니다.
엄마의 근심을 덜어주려고 석빈이는 엄마를 찾지도 안았습니다.
나는 아이를 안은채로 엄마와 무경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물론, 기도를 담았습니다.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는 무경이 엄마에게
조심스레 기도해줄 수 있는지를 여쭈었습니다.
뻔뻔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사랑해서인지,
하나님이 내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잘 들어주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무경이의 손을 잡고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무경이 어머니는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고맙다 인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과 계획이 있을것 같습니다.
절망의 때에 우리는 결국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경이에게 반창고

무경이는 석빈이와 쌍둥이 형으로 태어났습니다.
아직 7개월 아가인데 숨도 잘 못 쉬고, 먹지도 못합니다.
무경이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함께 있는 몇 시간 동안,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습니다.

무경이가 태어났지만  이 개월 간 눈 뜬 것도 보지 못했고,
한 번 안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온 몸에 이것 저것 꽂은 게 많아서 그렇기도 했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희망을 갖지 말라고 하지만
엄마는 포기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나 입으로 무엇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혼자서 숨 쉬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얼굴이 굳어 딱딱했습니다.
엄마는 표정 없는 무경이를 매일 같이 만져주었습니다.
그렇게 만져 주었더니 삼 주일만에 하품을 했습니다.
엄마는 하품 한 번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무경이의 엄마는 아이가 처음 하품 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너무 좋아서 그날 잠도 안 왔다고 합니다.
아이를 치료할 약도, 치료 방법도 없고
앞으로 합병증만 없으면 다행이라고 합니다.
하품을 하지만 무경이는 아무런 표정이 없습니다.
주사를 맞아도 아파한 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울었던 적도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적 일입니다.
아무 표정도 없던 무경이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간호사가 다가오자 아이의 심박동수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무경이 대신 기계가 아이의 울음을 울어준 것이겠지요.
“장기라도 이식해서 아이가 살아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이미 많이 살았으니까..”
엄마의 마음입니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자식을 살리고 싶은게 엄마의 마음입니다.
엄마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무경이의 호흡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엄마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무경이에게 향했습니다.
덕분에 동생 석빈이를 내가 맡았습니다.
그 때부터 석빈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내게 안겨 있었습니다.
엄마의 근심을 덜어주려고 석빈이는 엄마를 찾지도 안았습니다.
나는 아이를 안은채로 엄마와 무경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물론, 기도를 담았습니다.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는 무경이 엄마에게
조심스레 기도해줄 수 있는지를 여쭈었습니다.
뻔뻔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사랑해서인지,
하나님이 내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잘 들어주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무경이의 손을 잡고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무경이 어머니는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고맙다 인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과 계획이 있을것 같습니다.
절망의 때에 우리는 결국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영이의 전시소식

“수영이를 주제로 글 전시회를 열면 어떨까?”
며칠전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수영이는 두려움인지 기쁨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두근거리며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주일동안 이리저리 뒤섞여 있던 스케줄을 정리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년후가 될지, 이년후가 될지 장담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어제 저녁에 모든 약속들을 정리하고
결국 수영이를 위한 전시회를 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글전시회라고 하기에는
여러 가지 형태를 갖춘 모양이 될 것 같습니다.

수영이의 글을 모티브로 여러 사진전과 그림,
캘리와 영상들로 갤러리 곳곳에 볼거리 가득 구성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초대해서
봄날에 어울리는 달달하고 따스한 시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머릿속으로만 가득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을지 기대가 됩니다.
아마 전시는 5월 둘째주중으로 잡을 것 같고,
Designents의 석범실장님이 디자인을
이음편집장과 뮤지션sy
(5월 21일 결혼을 앞 둔)혜린이.. 등등이 도와주기로 약속했다는 건 안 비밀.

어제 수영이를 만나서
“너가 가장 좋아하는 글을 다섯개만 골라달라”고 말했더니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 하나 하나에
제 영혼을 담아 썼어요.
그래서 어느것 하나 내게 소중하지 않은게 없어요.”
이런 진지한 대답이라니.
수영이는 자기가 장애를 가졌기에
자신의 글을 통해 아픈 이가 회복되기를 기도한다고 합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아멘.

 

 

어떤 전시회

하나님은 얼마나 아름다우신지요.
그제 디스토니아를 앓고 있는 수영이를 만나고
어떻게 이 아이를 도와줄지에 대해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계속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글로 책을 만들어주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지만
만드는 과정과 비용 뿐 아니라
누가 이 책을 읽어줄 것인가도 문제였습니다.

그러다가, 수영이를 주제로 전시회를 여는 것에 대한 감동이 들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솔라갤러리 이영주 관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고 주님이 주신 감동을 전해줬는데
내 마음과 거의 같았습니다.
그래서 통화한지 십분도 안되서 잠정적이지만 결정해버렸습니다.
수영이의 글과 사진과 그림들을 콜라보해서 전시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여러 일과 선교 때문에 외국에 나갈 시간이 걸려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과 전시할만한 때를 조율해야 하겠지만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따라 진행해볼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작고 연약해 보이는 한 영혼을 통해
누군가 일어나는 꿈.
주님 감사합니다.

홍수영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글을 썼습니다.
수영이는 병실에 누워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글은 이 아이에게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에 아이는 세상과 연결되었습니다.
늘 집안에만 있다가 19살에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소원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학기당 최소학점을 듣고 있지만
어느새 4학년이 되었습니다.
언제 졸업할 수 있을지는 요원하지만
이미 대학원까지 공부할 것을 단단히 마음먹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영이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마다 역할이 다른 것처럼
수영이는 자신이 쓰는 글을 통해 주님이 일하시길 기도합니다.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만났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 뿐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몸을 고정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사진을 찍어 보지 못한 이 아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예쁜 미소를 가졌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년에 초등부 학생들에게
설교를 할 기회가 한 번 있었다고 합니다.
가슴 터질만큼 기뻤고,
그때는 생각보다 말이 잘 나와서 감사했다고 합니다.
수영이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음식을 먹게 되면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걸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걷게 되면 평소보다 말이 잘 터져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걸으며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날씨는 아직 추웠지만 햇볕은 어느새 봄이었습니다.

나는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색채의 연금술사라는 찬사를 받는 화가 조르주 루오
그의 전시회에 적힌 작은 문구앞에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린 작품 아래에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될 만큼 
감동적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
루오의 유일한 소원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너의 글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너의 글을 통해 한 사람이 변화된다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잔치가 벌어질 거야.
한 사람의 가치는 우리가 이해하고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같이 천국잔치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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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앙을 부양할 어떠한 것도
내 본성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무장한 의를 벗어던진다.
박해를 받으나 결코 자포자기 않는다.
불행을 견디나 번민에 빠지지 않으며,
그의 고행과 흔적을 몸 도처에 간직한다.
원수들이 무슨 짓을 해도 그의 이름을 위해
견딜 은혜를 받은 자를 무엇도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기도는 많은 이름들을 부르게 하고
뉘우쳐야 할 것이 피어오르니
곧 새벽도 담을 넘어버린 후이니이다
나는 아무도 밟지 않는 시간을 깨워
나의 두 손이 당신을 위해 있음을
그침없는 눈물로 말하리이다.
나의 흔들림이 물결치며 
고요를 갈라놓을지라도
어둠에 뒤섞이지 않으리로다
더 깊은 빛을 향해 두 눈을 열리이다
영원이 온 순간마다 깃들어 있음을
주여, 새로운 아침으로 말씀해주옵소서

글.  홍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