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진을 찍지만 사실, 색약입니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 늘 불안함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풍경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까?’
‘내가 아파하는 풍경을 보면
누군가도 똑같이 아파할까? ’

 

전 제가 보고 있는 색을 잘 모릅니다.
빨강, 노랑, 파랑. 색을 조금만 섞어도
대략 난감합니다.
온유가 4살 적부터
제게 적극적으로 색깔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더 난감합니다.
아빠가 되어서 뭐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할 텐데,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눈치 빠른 온유는 그런 내 앞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엄마에게 쪼로록 달려갑니다.

 

 

색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인지
새로운 카메라가 출시될 때마다
카메라를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했습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할 테니,
신제품일수록 더 정확한 색을 재현해낼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워낙 고가라 자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몇 년 전에
큰 맘 먹고 카메라를 바꾸었습니다.

 

 

내친김에 색 재현력이 좋다고 정평 난
모니터까지 새로 장만했었죠.
카메라와 모니터를 새 것으로 바꾸고 나니
신기하게도 색에 대한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며칠 전, 친하게 지내던 디자이너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는 내 모니터를 보고
기가 막힌 듯 웃었습니다.
“이 모니터, 색이 전혀 맞지 않는데요?”
모니터마다 기준 색이라는 게 있는데,
제 모니터는 전혀 엉뚱한 색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문득 ‘플라세보 효과’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진짜 약과 맛과 모양이 비슷한
가짜 약을 먹은 환자들에게
실제 치료 효력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플라세보 효과.
무려 환자의 30%가 정말
나아진 것 같다고 말한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장비들을 바꾸었지만
실제 바뀐 것은 거의 없었던 셈인데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았던 걸 보면 말입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쓴 스콧 펙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삶은 고해다.
하지만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문제는 우리에게 용기와 지혜를
요구할 뿐 아니라 없던 용기와 지혜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마치 아이들에게 일부러 문제를 내주고
풀어 보도록 하는 것과 같다.
문제를 피하려고 하면 그 문제보다 피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사실은 더 고통스러워진다.”

 

 

여전히 전 색들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사진가인 제가 색약이라는 문제를 풀
방법도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것도, 두려운 것도,
기뻐하는 것도, 감사하는 것도
모두 내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