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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수넴여인

엘리사는 수넴여인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7년동안 기근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넴여인은 가족을 데리고 블레셋으로 향합니다.
수넴여인은 엘리사의 말을 따라
블레셋에서 7년동안 지냈습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자기 땅과 집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살던 곳에서 이주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수넴여인은 그 지역에서 꽤 넉넉한 부자였기 때문에
본토땅을 떠나는 것에는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면 그만큼 잃을 위험이 적습니다.
마치 아람군대에 둘러싸인 사마리아성에서
나병환자들이 성안에서 죽으나,
성밖에서 죽으나 마찬가지라 여긴것 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가졌다면 상대적으로 느낄 위협은 더욱 커집니다.
하지만, 수넴여인은 엘리사의 말을 따라 블레셋으로 떠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지만 아들을 갖게 되었고,
그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7년의 이민생활을 끝내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을 때
그의 소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문에 지난 시간들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장 오늘의 막막함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늙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수넴여인은
이제 과부로써 한 나라의 왕에게 자신의 사정을 부르짖기 위해
왕궁을 향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앞에서 막막하고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믿음의 선조들도
하나님의 약속앞에 이리 저리 흔들리며
이스마엘을 낳거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하곤 합니다.
수넴여인이 왕궁에 다다랐을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왕에게 그동안 엘리사가 행한 위대한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린 일이 있는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바로 지금 왕을 찾아온 여인이라고 말합니다.
“내 주 왕이여, 바로 이 여인입니다.
엘리사가 살려 낸 사람이 이 여인의 아들입니다” (왕하 8:5)
게하시가 이야기할 그때 여인이 찾아온 그 장면을
성경은 ‘베힌네’라는 감탄사를 사용해서
이 장면이 얼마나 극적이며 절묘한 타이밍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인은 이 상황 앞에 얼마나 전율했을까요?
왕과 게하시 또한 이 예기치 않은 상황앞에 얼마나 놀라했을까요?
이 기적같은 만남을 통해
여인은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한 일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옛소유 뿐 아니라, 7년간의 소출까지 되돌려받게 됩니다.
왕도 게하시도, 여인도 7년전에 이 만남을 계획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시간을 주님은 계획하고 뜻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두렵고 불안한가요?
가짜로 힘들고 두렵고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진짜 광야를 걸어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 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것을 연상시킵니다.
당신의 호흡으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듯
우리를 살게 하시며
빛이 있으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천치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지향점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1: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7년간 타지에 머무르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던 수넴여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우리의 처지와 오늘의 아프고 어둔 시절이
마치 광야와 같다면
우리를 궁극적으로 살게 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38

하나님의 마음은
힘든 중에, 아픔 중에, 고난 중에,
더욱 알게 된다.
그것이 광야가 존재하는 이유일까?

[내가 노래하는 풍경 #38]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르바르’ 이다.
미는 from 이란 뜻을 지녔고
말씀이라는 ‘다바르’ 에서 이 단어가 나왔다.
이는 광야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혀 볼 품 없어 보이는 이 곳을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모두 거쳐갔나보다..
사람의 눈에 전혀 쓸모 없어 보이는, 버려진 이 곳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제련소일 줄 누가 알 수 있을까..
40년간 이 광야의 길을 걸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 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로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풍경을 연상시킨다.
당신의 호흡으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듯, 우리를 살게 하시며
빛이 있으라 하신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셨다.
무엇보다 말씀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요1:1)

불확실성 속에 어디로 가얄지 모를 우리의 처지와 어둔 시절이
마치 광야와 같다면 우리를 궁극적으로 살게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승리자

골목,
내 마음의 고향

빈자리는

감정과 느낌은 결과로써 나타날 수 있겠지만
지금껏 기도할 때 아무 감정과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과 달랐다.
마치 광야의 굵은 모래만이 가득한
내 마음 속에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구하고 구했다.
그 때 충분히 깨닫았던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그 빈자리.
주님 대신 어떤 것도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그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