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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29

부모와 자식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지만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라지만
서로 등을 돌리면 남남이 되어 버리는
가장 가깝고도 위태로운 사이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존중하지 않아도
지속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지만
부부는 끊임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된다.
라는 말은 신혼의 아주 짧은 시기에만 통용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사랑뿐 아니라 인내해야 하고,
용서해야 할 날이 얼마나 많은가요?

‘사랑하면 된다.’
이 말이 인생 전체에 답이 되려면
사랑이라는 속성을 다시 이해해야만 가능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않으며..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노래하는 풍경 #29]

#끊임없는사랑
#끊임없는존중
#사랑하면된다
#사랑은오래참고
#사랑은온유하며
#결혼을배우다

#럽앤포토 #천국의야생화
#노래하는풍경

하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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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대한 속성을 묵상하던 중
한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 대신,예수님이라는 말을 넣어도 뜻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나는 자녀들에게 부모가 끼치는 영향이 100%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이 부모의 손이 미치지 않은, 방치된 순간이라고 하더라도
그 영향은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부모와의 관계를 근거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려 애쓰지만,
그래서 나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잡아주려 의도하지만,
인간 부모는 결코 온전하지 못함을 매 번 경험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기준로써,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이며,
그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와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온유에게도, 소명에게도 이 사실을 전하려 합니다.
‘아빠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나와 같지 않다.’ 라는 사실입니다.
육신의 아빠를 너머 하늘 아빠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내 몫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충분한 것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때로는 우리에게 부족하거나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롬5:8)
하나님이 확증하셨다는 말은 부족한 게 아니라 충분하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이미 당신은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 사랑을 작게 여기는 우리의 속물적인 인식 때문입니다.
우리 손에 금가락지를 쥐어주면 주님은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걸까요?
예수님을 내어 주신 것이 금가락지만 못한 것일까요?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 대적들을 쫓아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할것이지만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출33:2-3)
우리 인생의 목적이 가나안의 입성이라면
하나님의 이런 제안도 제법 괜찮을 것 같지 않은가요.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출33:6)
그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않았으며, 장신구를 떼어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출33:15)
그들의 목적지였던 가나안 땅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복은 가나인의 입성이나 장신구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을 다시 한 번 묵상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결코 작지도,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비추시는 주님의 사랑은 차고 넘칩니다.

살아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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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주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살아주어서 고맙다.”

작은 자취방에서 후배를 위해 기도할때였는데
그 후배는 계모의 학대속에 어린 시간을 보냈고
공장에서의 아픈 시간,
쉽지 않은 시절을 살았습니다.

청년의 때, 그는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준 주님이 너무 고마웠고,
그래서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는 안쓰러울만큼 헌신하던 후배였습니다.
버려진 아이들을 자기 집에 데려와 살다가 몇 번이나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자신의 몸을 혹사할만큼 헌신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이면에는
예수님 마저도 지난 시간동안 
자신을 거절했던 사람들처럼 떠나버릴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을 혹사하며 집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부어지자
그런 두려움은 눈녹듯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언제라도 목숨을 놓아버릴 수 있을정도로 암울했던 시간을 보냈지만
그만큼 아프고 힘들었지만
살아서 주님을 만나 사랑하는 오늘을 만났습니다.

“살아주어서 고맙다.”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을 만나고 나니
이제는 사랑하는 주님 때문에 사랑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