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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등불

외국어 영역 답안을 체크하는 공란이 부족해서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문제지에서 몇 번을 확인하고는
막상  5번부터 답안지를 밀려서 작성했습니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 
수능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나는 며칠 동안 집을 떠나 여행했습니다.
여행한다고 적어놓고 떠났지만
부모님은 며칠 동안 친구들을 수소문하며 걱정하셨지요.
어린 나이에 경험한 세상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 원치 않았던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다시 시험을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선생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시 원치 않았던 대학과 학과에서
마음을 붙이지 못한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 인생은 초반부터 이리저리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흔들린 인생을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흔들린 인생이 아프지만
그 아픔은 나를 만들어 주는 기초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흔들림이 가치 있으니
보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흔들림은 아프고, 그것은 나를 짖이겨 놓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 흔들림이 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패가 실패로 끝나면 우리는 숨 쉴 수 없겠지만
실패는 또 다른 길 일뿐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인생은
지금 내 발 앞을 볼 수 있을 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인생의 내일을 알 수도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오늘은
그저 수많은 길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윗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선지자인 
사무엘이 다윗의 동네에 찾아온 날,
그래서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어진 날에도
다윗은 초대받지 못하고
들판에서 양을 지키는 막내였습니다.
꿈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은 그를
하나님은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리이다” (시18:28)
아무도 알지 못 했던 다윗의 인생에
주님이 찾아와 주셔서
그의 인생에 등불을 밝혀 주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삼상16:7, 12)
스스로도 알지 못 했던 그의 인생의 계획을
주님을 알고 계셨습니다.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지만
그의 인생은 쉽지 않았습니다.
절대주권자였던 왕으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당해야만 했고
그를 지켜주던 사람들은 
죽거나 위험에 처해야만 했습니다.
끊임없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그는 사울왕의 목숨을 지켜주거나 선의를 베풀었지만
세상은 자신의 의로움과 반대로 여전히 적대했습니다.
 
끝없이 흔들리는 다윗의 인생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아파해야 했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시18:4-5)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
이렇게 무거운 말들이
다윗의 삶을 묶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인생입니다.
 
시편 18편은 그 모든 시간이 지난 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은 시로 유명합니다.
성경의 시편 18편 앞에는 
이런 문장이 친절하게 적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전쟁 같은 삶, 전쟁 같은 인생을 마치고
수십 년이 지나 다윗은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며
시편 18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다.” (시18:1-2)
 
그분이 우리 하나님, 우리 아버지 입니다.
 

후배의 작은 학원

지방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후배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는 학원을 경영하는데 꼭 필요한 만큼의 학생들이 모여있습니다.
어쩌다 한, 두 명의 학생이 학원을 나가게 되면
학원 운영이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꼭 그 수만큼의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매년 이것을 경험하면서 후배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몇 년 전, 학원에 다니던 학생의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더 이상 학원에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후배는 그 아이의 부모에게
학원비를 받지 않아도 이 아이를 계속 책임지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그 후로 수년간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중학생이던 아이가 그렇게 수년이 흘러 고3이 되어 이번에 수능시험을 치뤘습니다.
후배는 아이의 대학 원서를 함께 준비하며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네 할 일을 해내는 것 같아.”
자신의 특기란에 학원 선생님이 말해준 이 말을 적었더니
대학 면접관이 이 부분을 그렇게 칭찬해주셨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학원에 나오지 않아도 될 아이들이
한 달전부터 무슨 비밀작전처럼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작은 학원의 원장인 후배에게 깜짝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다 같이 옷을 맞춰 입고 스튜디오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다 함께 연극을 보고, 후배에게 온갖 편지와 노래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생각지도 못 했던 감동스러운 시간 속에서 펑펑 울고 있는 후배에게,
작전 성공이라며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좋아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나는 신앙과 믿음이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작은 동네 학원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집니다.

오늘은 밤이어도

매 번 수능을 마치고 나면
뉴스를 보기가 두렵습니다.
수능의 결과에 각자 희비가 나눠지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또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가 가진 꿈은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왔지만
수능시험 때 답안지를 밀려 쓰거나,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몇 개의 좋은 기회를 포기했는데
내가 마주한 결과는 참혹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프지 않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수능을 치르고 아픈 마음 때문에
얼마 동안 집을 나와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실패할 적마다 마음은 처절하게 아픕니다.
아프지만, 이제 나이 마흔을 바라보고 조금 알게 됩니다.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생의 끝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막막함입니다.
하지만 그 막막함은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흐름을 만나게 됩니다.
막막하다고 끝장내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잘못이고 완전한 실패입니다.

얼마 전 4년여 동안 준비한 공부가 있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나는 공부한 결과물을 손에 쥐지 못 했습니다.
내 마음에 또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내가 선생님이 되지 못 했던 이유는
신체검사에서 색약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핸디캡이 있어서 선생님이 되지 못했지만
핸디캡을 가진 눈으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밤이어도, 내일의 아침은 성실하게 다시 찾아옵니다.

실패는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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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만난 청년은
제게 ‘하나님께 지독하게 실망했다.’고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알게 되면
나도 자신처럼 반응할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을 하셨는지
묻고 또 물었지만
그 분은 침묵으로 일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렇게도 무책임한 하나님으로부터 등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얼마나 지독하게 무엇을 하셨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원하던 대학을 떨어뜨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 순간,
내가 수많은 실패를 살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나의 실패는 하나님을 변증할만한 근거가 되어주었습니다.
두 번의 수능시험.
답안을 내려쓴 이야기, 신체검사에서 떨어진 이야기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작정하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무책임하시거나 무능력하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얼마나 근시안적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나 계산적인지 모릅니다.
내가 불안해 하는 많은 두려움은 ‘내일을 알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불확실 때문에 생겨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알지 못하고, 내 인생의 계획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의 실패까지도
그 분의 주권 가운데 있겠지요.
어쩌면 보통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의도하신 실패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그 분의 계획 가운데 서있음을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이면 수능입니다.
수고한 모든 이들이 각각 흡족한 결과를 얻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시험을 아주 망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인생의 유일한 통로는 아닙니다.
그것은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실패는 정류장일 뿐입니다.
만약 정말 그 인생이 실패하게 된다면
시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실패한 마음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길을 알지 못하지만
그 분은 길을 아실 뿐 아니라, 길을 만드십니다.
길은 주님께 속한 것일 뿐 아니라
그 분이 바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