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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없으면 어쩌냐

소명이가 아끼던 장난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속상한 소명이에게 누나 온유가 말했습니다.
“소명아, 우리 하나님께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같이 잘 찾아보자.”
“칫, 하나님이 세상에 어디있냐?”
이제 5살 된 장난꾸러기 소명이는, 생각하지 않고
이것저것 말해버립니다.
그런데, 소명이의 말에 온유가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 어떡해요.
소명이가 하나님 없대요.”
그리고는 소명이를 붙들고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소명아, 네가 유아부 나가잖아.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없으면 어떻게 하니?
우리가 함께 외웠잖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하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어쩌냐?”
그러게,
하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정말 어쩌나요..?

광화문의 한 날

“이용당할까 봐 두려워요.”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던지는 말을 파악하기가 힘들어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사람에게인가요? 영적인 부분인가요?”
“둘 다예요.”

광화문에서 오랜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불안한 눈동자와 절박한 목소리 때문에
외면할 수 없어서 정류장까지만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어수선한 이야기들 속에
알 수 없는 연민이 들어서 귀가시간을 늦추고
잠시 나그네를 대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미친 사람의 것으로 거절당한 경험이 많은 이입니다.
그래서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겠지 싶었습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으며 수많은 자살시도를 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게 되었고
더 이상 자살시도는 하지 않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감정 기복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대단히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 은사가 무엇인지는 진위여부를 떠나 나누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은사가 자신의 통제 못하는 감정으로 인해
잘못 쓰일까 봐 두려웠고,
수많은 사람에게 이용당한 경험 때문에 믿지 못해 두렵다고 합니다.
그의 은사와 그가 나눈 비전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내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에게 말해준 것은 지금 이 시간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허락하신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루실 성취가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지만
그 수혜를 내가 입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거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이용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생각입니다.
당신은 그저 내게 이 시간 하나님이 위로하라고 보내신 영혼입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려 합니다.

그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기업이 성공가도를 달릴 때도
그는 여전히 누추한 풍경에 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은혜와 은사가 있으면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되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일생 동안 흔들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대표적인 인물들 하나하나가
수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다윗이,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요한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성경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십니다.

동화같은 아이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뜻밖의 웃음이 가득합니다.
“얘들아, 여리고 성은 누가 무너뜨렸을까?”
“저는 아니예요. 소명아 너가 그랬니?”
“아니야. 나는 안 그랬어. 누나가 그랬어.”
“난 아냐. 소명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아.
그러면 야단맞지 않거나, 덜 야단맞을 수 있어.”
그렇게 둘이서 토닥거리며 장난치다가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다 보면
그 속에 작은 보석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있잖아요. 하나님은 무서운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으응. 다른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하나님은 무서워요.
죄를 지으면 무서우시잖아.
그런데 하나님은 좋으신 것 같아.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잖아.”
혼자서 종알거리는 온유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누나 옆에서 말을 주워 받은 소명이가 이야기를 거듭니다.
“아빠, 저도 하나님이 무서워요.
그런데 하나님은 좋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친구잖아요. 히히히”

내가 노래하는 풍경 #23

a123

 

비전은 누군가를 따라 한다거나
떼를 쓴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은 때가 되면 생겨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 깨달을 때..

콜링은 콜러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래하는 풍경 #23]

꿈에 대한 이 글은 
핸드폰에 적어 놓은
다섯 줄 정도로 짧은 문장이지만,
이 글의 배경은 꽤 긴 이야기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없었습니다.
학창시절에 꿈이 없는 사람을 호명하면
부끄러워하면서도
나는 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꿈이 없었지만 꿈이 있는 것처럼
거짓을 표시하는 게 싫었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수치스럽고,
모멸스러운 감정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현실에 수긍하며
내 꿈은 선생님이라고 자위하며
손드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내 꿈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내 꿈이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게 꿈이라는 말은
보다 포괄적이고 미래적인 느낌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했던 것처럼
그리고 결혼을 해서야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된 것처럼
비전도 이와 비슷합니다.

비전은 누군가를 따라 한다거나
떼를 쓴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저는 여전히 내 꿈이 무엇인지 알지 못 합니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그림을 그려갑니다.
그리고 그 꿈이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는 보다 명확합니다.

저의 경우에
비전은 때가 되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내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 깨달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