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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랑해

늦은 밤,
아내와 온유가 소근소근 대화합니다.
“엄마, 내가 만일 괴물이라면
엄마는 어떻게 할꺼야?
진흙에 뒹굴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럼 갖다 버려야지.”
엄마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온유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습니다.
나도 언젠가 온유에게 읽어준 적 있는 동화 이야기입니다.
동화책 속의 아이가 괴물이 되어도
아이의 엄마는 여전히 괴물을 사랑한다는 내용입니다.
엄마는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온유야,
온유가 만약 괴물이 되어
진흙을 뒹굴어도
엄마는 온유를 너무 사랑해.
온유가 괴물이 되어 집이 다 부서져도
엄마는 온유를 사랑한단다.
온유야, 너가 괴물이 되어….. 이렇게 되어도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너를 사랑해.”
온유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연신 닦아냈습니다.
의외의 반응에 아빠도, 엄마도 조금 놀랐습니다.
이제 만족했다는 듯 온유는 새근새근 잠들었지요.
나이 어린 소명이를 더 돌봐주는 모습에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나 봅니다.
동화책에 나오는 동화 같은 사랑을
자기 자신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감격했나 봅니다.
언젠가 기도 중에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을 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렴.”
너무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말이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득문득 주님이 마음에 일러주신 말이 생각나서
의지적으로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려 합니다.
한없이 부족한 나를 주님이 여전히 사랑해주시는 사랑처럼..

13년만의 만남

75세 때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을 약속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후 용기 있는 선택과 기도와 전쟁,
또한 여러 실수를 경험하며 24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사라와 하갈의 반목과  인간적인 실수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후
하나님은 13년간 침묵하십니다.
1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주님은 더이상 자신을 만나주지 못할거라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하나님과의 만남을 마치 빌보 배긴스가 지난날을 추억하는것처럼 살지 않았을까요?
내게 실망하신 하나님은 이제 더이상 나와 관계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 지난 24년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후사를 약속하셨지만, 도무지 잡히지 않는 약속을 당황해 하지 않았을까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속에
아브라함의 회의와 조소가 보이는 듯 합니다.(창17:18)

하나님은 13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좀처럼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던 약속들이 보다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과 실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지만, 그 구체적인 성취에 대해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어느새 아브라함은 죽을 때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고
그의 아내 또한 경수가 끊어져서 현실적으로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네가 100세가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긴장 하나 없이 단순하고도 지루하게 세월을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기전까지 그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의도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추측만 할 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방식으로, 우리에게도 그런 방식을 택하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이 우리 삶의 어느 때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주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확실하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수면위에 주님의 일하심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날마다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내가 다 만지지 못하는 시간조차도,
당신은 한 번도 그 계획을 거둔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당신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때론 비이성적이고, 때로는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나를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이런 나를 왜, 이토록 기다려 주실까?
이런 나를 택하여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나를 넘어서 이 시대의 답답한 현실 앞에 주님은 과연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내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며,
주님은 당신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주님의 그 완전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완전함에 부끄러움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여기서 완전이란 말로 사용된 ‘타밍’이란 단어의 의미는
흠없는 완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온전함과 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온전함과 완성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단순히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쓰는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한 투쟁도 아닙니다.
그것은 얻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역. 그 자체도 우리의 완성이나 온전함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로 기뻐해야 하지만, 먼저는 주님 그 분을 기뻐해야 합니다.

마치 질그릇에 담겨 있는 보배처럼
질그릇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보배가 너무 귀한 것처럼
전혀 온전해 보이지 않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그런 단어를 허락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나와 함께 임마누엘로 거하시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왕이신 주님으로 내 마음에 모신다면,

동화같은 아이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뜻밖의 웃음이 가득합니다.
“얘들아, 여리고 성은 누가 무너뜨렸을까?”
“저는 아니예요. 소명아 너가 그랬니?”
“아니야. 나는 안 그랬어. 누나가 그랬어.”
“난 아냐. 소명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아.
그러면 야단맞지 않거나, 덜 야단맞을 수 있어.”
그렇게 둘이서 토닥거리며 장난치다가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다 보면
그 속에 작은 보석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있잖아요. 하나님은 무서운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으응. 다른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하나님은 무서워요.
죄를 지으면 무서우시잖아.
그런데 하나님은 좋으신 것 같아.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잖아.”
혼자서 종알거리는 온유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누나 옆에서 말을 주워 받은 소명이가 이야기를 거듭니다.
“아빠, 저도 하나님이 무서워요.
그런데 하나님은 좋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친구잖아요. 히히히”

온유와 소명이의 기도

연말이 되면 여러 작업들 때문에
본의아니게 아이들이 방치됩니다.
그래서 아쉬울만큼 짧은 시간이라도
아빠부터 순서대로 돌아가며 함께 기도하곤 합니다.
어른들의 기도가 끝나고
아이들의 순서가 되면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됩니다.
기도의 내용을 듣다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때도 있고
때로는 마음을 쿵쾅거릴만큼
놀라운 믿음의 선포로 들릴때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온유는 엄마에게 자주 공약을 합니다.
자기가 어른이 되면 시집도 안 가고
엄마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겠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는 건 궁금하지만
자기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늙어간다는게
그렇게 싫은 모양입니다.
요즘 기도할적마다 엄마 아빠 안 늙게 해달라는 기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소명이가 기도를 잘합니다.
어른될때까지 더 잘하게 해주세요.”
온유 누나의 기도를 듣고는
소명이가 기도할 때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내가 기도를 잘합니다.
나 기도 더 잘하게 해주시고..”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라나길 원하는 모습을 말해주는 것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유의 기도처럼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에 퍼져서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면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
얼굴과 얼굴로 볼 수 있겠지요.

http://lovenphoto.com/wp-content/uploads/2015/12/pray2.mp3

“우리 가족이 안 아프게 해주시고
예수님만 믿게 해주시고
우리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 안되게 해주시고
우리 가족이 힘들고 지치고 병들지 않게 해주세요.

소명이가 기도를 잘합니다.
어른이 될때까지 더 기도를 잘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이 기도하는 것 잊지 않게 해주시고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한테만 기도하고
우상한테 기도하는 사람들은 없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 많이 하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에 퍼지게 해주세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다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말씀들을 때 장난 안치게 해주세요.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
예수님만 믿게 해주시고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누나 나랑 축복하는 마음만,
사람하는 마음만 믿게 해주시고
예수님 하나님 사랑하고
믿고, 축복하게 해주시고
많이 기도하게 해주시고

내가 기도를 잘합니다.
나 기도 더 잘하게 해주시고
엄마와 아빠, 누나와 기도할 때
장난치지 않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말 듣게 해주시고
누나와 나랑 싸우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그리움

약속했던 원고를 미루고 미루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어서 책상에  앉았습니다.
제가 집중할 수 있도록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외출했습니다.
촬영을 제외하면 늘 함께 였는데
오랜만에 떨어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집이 너무 조용합니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온유는 방문을 쾅. 하고 열며 이렇게 외칩니다.
“여긴 내 놀이터다!”
“아니라니까, 온유야, 여긴 아빠가 작업하는 곳이야.”
“아니다. 여긴 우리 놀이터다! 으하하하!”
그러면 온유 뒤에서 소명이가 씨익 웃으며 등장합니다.
소명이는 프린트 버튼을 마구 눌러대고,
온유는 아빠가 앉은 의자를 흔들고 빙글 돌립니다.
정말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엄마가 정의의 사도처럼 나타나서는 두 아이를 끌고 방을 나갑니다.

그네 들이 떠나가고
조용해진 방에서 혼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습니다.
집이 너무 조용합니다.
조용한 공간을 그리워했지만
그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더 그립습니다.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온유가 짠. 하고 나타날 것 같습니다.
“여긴 내 놀이터다!”

우리 딸, 온유
종이비행기 타고 잠깐 날아와
아빠가 앉은 의자를 흔들어 주지 않겠니?

언젠가, 주님과 함께 하던 시간이
만져지지 않을 때
그 시간을 얼마나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면
다른 어떤 결핍도 감당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함께 할 때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빈 자리를 통해 더 크게 느껴지게 됩니다.

온유가 소명에게

택배 박스 안에서
온유가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가만히 듣다가 빵. 터졌습니다. ㅎㅎ

“뭐야 이소명!
너 누나가 아기일 때
왜 엄마 뱃속에서 빨리 안 나왔어!
너가 안 나와서 누나는 놀 사람이 없었잖아.
그동안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왜 빨리 안 나왔어!
이런 개구쟁이 녀석 같으니라구”

_ 네살 온유가 두살 소명에게

꼭 해야 할 일들

아내가 보내준 사진이예요.
어젯밤에 기도하는데,
온유와 소명이가 양쪽에 달라 붙어서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아내가 사진찍었다고 해요.

온유는 온유대로 자신의 기도를 하고,
소명이는 아빠 기도를 흉내내며
기도반, 장난반 해가며 무릎꿇었습니다.
어떻게 기도했는지
세 명이서 나란히 허리살 빼꼼히 보이는 사진을 보며 얼마나 웃기던지요.

밀려있는 일이 많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라는 말은 자기경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변명이라지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지만
그 일 때문에 가끔 우리 아이들이 뒷전이 됩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절박감도 생깁니다.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자상한 아빠는 아니지만,
잠자리에 누운 온유의 수다를 가만히 들어 주었습니다.

아빠 하늘색 하면 무슨 생각이 나?

아이들은 내가 궁금해 하는 질문을
자동판매기처럼 답하지 않습니다.
“온유야, 어제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의 일상을 물어 보아도
자신들의 관심에 집중되어
내 질문에 단답으로 끝나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는 자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끝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당장 할 일 많은 아빠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그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뤄야 할까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아이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지금이 아니면 그 무한한 상상력을 언제 엿볼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일일까요?
그래서인지 꼭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늘어갑니다.
내게는 정말 시간이 부족합니다.
잠을 줄여서라도 꼭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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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부모는 아이에게
적당한 눈물과 슬픔과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야 한단다.

아이에게 그것을 줄 수 없다면
아이는 눈물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결핍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8]

마음의 부자로

DSC01098

관절이 움직이는 장난감을 만지다가
생각처럼 모양이 안 만들어지자,
우리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상하게 시작한 기도에
아픈 찬영이가 나오고
아프리카와 네팔친구들이 나옵니다.
아이들의 마음에는 어떤 나무들이 자랄까 궁금합니다.
온유의 기도처럼
마음의 부자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누나 기도하고
누나 이거(장난감) 고장났다고 기도하자.”

“뭐야. 지금 너 기도(하고 있는지)하는지 알았잖아.”

DSC01106

“예수님 찬영이 아픕니다.
찬영이 낫게 해주시고
찬영이가 교회 다닙니다.
찬영이가 정말 아픕니다.
지켜주시고, 돌봐주시고, 고쳐주세요.
찬영이가 귀여운 아이인데
귀엽다고 돌봐주게 해주시고
고쳐주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 아빠가 아프리카 갔다왔는데
아프리카 친구들, 네팔 친구들
아픕니다. 불쌍한 나라들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예수님 사랑하고 교회도 다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난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부자로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가족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부자로 살게 해주세요.”

DSC01104

무섭지 않아!

네 살된 온유가 혼자 폴짝폴짝 뛰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안 무서워~ 안 무서워~ 온유는 안 무서워~”
대체 저런 노래는 어디서 듣고 온 걸까.

2012-06-27 18-14-04-2059

노래를 부르는 온유 뒤로
아내가 슬금슬금 다가가,
“어흥~” 하며 놀래킵니다.
순간 꽤 놀랐는지 온유는 얼음이 되었습니다.

“이래도 안 무서워?”
“안, 안 무서워!”

거짓말! 얼굴은 완전 굳었는걸요.
“사자가 나타났는데, 안 무서워?”
“응!”
“왜 안 무서워?”
“엄마 아빠가 있잖아!”
순간, 아내도 저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197

내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든든한 사람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비록 한없이 부족하고 성근 아빠지만,
나를 이렇게 믿고 있는
이 아이만은
꼭, 지켜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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