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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의 만남

75세 때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을 약속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후 용기 있는 선택과 기도와 전쟁,
또한 여러 실수를 경험하며 24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사라와 하갈의 반목과  인간적인 실수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후
하나님은 13년간 침묵하십니다.
1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주님은 더이상 자신을 만나주지 못할거라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하나님과의 만남을 마치 빌보 배긴스가 지난날을 추억하는것처럼 살지 않았을까요?
내게 실망하신 하나님은 이제 더이상 나와 관계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 지난 24년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후사를 약속하셨지만, 도무지 잡히지 않는 약속을 당황해 하지 않았을까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속에
아브라함의 회의와 조소가 보이는 듯 합니다.(창17:18)

하나님은 13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좀처럼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던 약속들이 보다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과 실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지만, 그 구체적인 성취에 대해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어느새 아브라함은 죽을 때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고
그의 아내 또한 경수가 끊어져서 현실적으로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네가 100세가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긴장 하나 없이 단순하고도 지루하게 세월을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기전까지 그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의도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추측만 할 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방식으로, 우리에게도 그런 방식을 택하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이 우리 삶의 어느 때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주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확실하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수면위에 주님의 일하심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날마다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내가 다 만지지 못하는 시간조차도,
당신은 한 번도 그 계획을 거둔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당신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때론 비이성적이고, 때로는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나를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이런 나를 왜, 이토록 기다려 주실까?
이런 나를 택하여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나를 넘어서 이 시대의 답답한 현실 앞에 주님은 과연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내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며,
주님은 당신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주님의 그 완전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완전함에 부끄러움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여기서 완전이란 말로 사용된 ‘타밍’이란 단어의 의미는
흠없는 완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온전함과 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온전함과 완성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단순히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쓰는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한 투쟁도 아닙니다.
그것은 얻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역. 그 자체도 우리의 완성이나 온전함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로 기뻐해야 하지만, 먼저는 주님 그 분을 기뻐해야 합니다.

마치 질그릇에 담겨 있는 보배처럼
질그릇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보배가 너무 귀한 것처럼
전혀 온전해 보이지 않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그런 단어를 허락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나와 함께 임마누엘로 거하시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왕이신 주님으로 내 마음에 모신다면,

식사기도

“엄마, 왜 자꾸 잊는 걸까?”
온유가 유치원 점심때마다
기도해야지 생각하는데도
점심때면 어김없이 깜빡 잊는다며 속상해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점심에 기도할 수 있는
선교원에 다니고 싶다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아내와 얘길 하며
기도를 잊을 때마다 훈육하는 방법도 생각했다가
곧바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유치원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면 어떨까 하구요.
매가 무서워서 기도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서입니다.
스스로 흥이 나서 즐겁게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내와 이런저런 계획을 짜고 있는데

온유가 환하게 웃으며 유치원에서 돌아왔습니다.
유치원 가방을 벗기도 전에
이야기를 쏟아내기 바쁩니다.

“내가 아침을 먹으며 기도했거든,
‘하나님, 제발 오늘은 유치원에서 점심을 먹을 때
기도하는 걸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 라고 말야.
그런데 점심을 먹는데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잊지 않고 기도했어요.
아. 기분 좋아.”

내가 노래하는 풍경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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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부모는 아이에게
적당한 눈물과 슬픔과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야 한단다.

아이에게 그것을 줄 수 없다면
아이는 눈물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결핍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8]

마음의 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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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이 움직이는 장난감을 만지다가
생각처럼 모양이 안 만들어지자,
우리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상하게 시작한 기도에
아픈 찬영이가 나오고
아프리카와 네팔친구들이 나옵니다.
아이들의 마음에는 어떤 나무들이 자랄까 궁금합니다.
온유의 기도처럼
마음의 부자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누나 기도하고
누나 이거(장난감) 고장났다고 기도하자.”

“뭐야. 지금 너 기도(하고 있는지)하는지 알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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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찬영이 아픕니다.
찬영이 낫게 해주시고
찬영이가 교회 다닙니다.
찬영이가 정말 아픕니다.
지켜주시고, 돌봐주시고, 고쳐주세요.
찬영이가 귀여운 아이인데
귀엽다고 돌봐주게 해주시고
고쳐주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 아빠가 아프리카 갔다왔는데
아프리카 친구들, 네팔 친구들
아픕니다. 불쌍한 나라들도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예수님 사랑하고 교회도 다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난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부자로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가족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부자로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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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지 않아!

네 살된 온유가 혼자 폴짝폴짝 뛰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안 무서워~ 안 무서워~ 온유는 안 무서워~”
대체 저런 노래는 어디서 듣고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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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는 온유 뒤로
아내가 슬금슬금 다가가,
“어흥~” 하며 놀래킵니다.
순간 꽤 놀랐는지 온유는 얼음이 되었습니다.

“이래도 안 무서워?”
“안, 안 무서워!”

거짓말! 얼굴은 완전 굳었는걸요.
“사자가 나타났는데, 안 무서워?”
“응!”
“왜 안 무서워?”
“엄마 아빠가 있잖아!”
순간, 아내도 저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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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든든한 사람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비록 한없이 부족하고 성근 아빠지만,
나를 이렇게 믿고 있는
이 아이만은
꼭, 지켜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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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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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외국을 나가보면 
비로소 이른 밤을 알게 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머무르던지, 
숙소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로는 
집으로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덮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삶을 알게 됩니다.
거칠고 노곤한 육체는 
밤을 통해 쉼을 얻습니다.

단순하다는 말이 거칠고 험하거나
피곤하다는 말의 언저리에 있는 말은 아닙니다.
단순하다는 말은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을 털어내고,
주님과 만나는 접촉면의 불순물을 
정돈한다는 의미와 가깝습니다.

한국으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풍요로움이 나를 안습니다.
온갖 단순하지 않는 요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합니다.
선교지에서 만난 이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그때가 좋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불편한 잠자리와 이동 수단, 
느린 인터넷 속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상점들..
도대체 거기가 더 좋을게 뭐란 말인가요?
더 좋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주님과의 친밀함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풍요로움이 
오히려 내 눈을 멀게 할까 
내 마음을 조심스레 살펴봅니다. 

[노래하는 풍경 #7]

 

 

내가 노래하는 풍경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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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전체 중 극히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외식(外飾)자이다.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내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만일 모두가 나를 부정(否定)해도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이 긍정(肯定)한다면
나는 다행스러운 길을 걷고 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

살아남은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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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함께 예배드렸습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7:5-8)
온유에게 이 말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다면,
예수님보다 초컬릿, 사탕, 장난감 같은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외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외식하는 것은 마치 연극에서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으로 연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함께 드린 예배는 계속 있었지만
어제의 예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처음으로 온유가 주도해서 기도제목들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위해서도 기도하자는 말에
궁금해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천국에서 외할아버지가 잘 기다리고 계시라고
우리가 나중에 할아버지 만나러 갈테니까
거기서 잘 기다리고 계시라고 기도하고 싶어서.”

장인어른은 아내가 고등학교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물론이고, 저도 얼굴을 뵙지 못했습니다.
온유가 내놓은 기도제목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에
그 기도도 함께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무리하는 대표기도도 온유가 맡았습니다.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시고
우리 가족들이 병이나
나쁜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시고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소명이도 기도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들이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로만 가게해주세요.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세요.

교회서도 장난치지 않고
하나님만 찬양하고

우상한테 절하는 사람은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주시고
추석때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들
하나님한테 절하게 해주시고
하나님께만 기도하게 해주세요.

내 생각과 내 마음과
우리 가족들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시고
마음이 초컬릿, 사탕, 장난감으로 가지않고
하나님쪽으로 가게 해주세요.”


요즘 계속 묵상하는 에스겔 말씀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십니다.
네번에 걸친 심판에 대한 말씀속에서(겔14)
크게 주목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의인으로 대표되는 노아, 다니엘, 욥도 심판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아들이나 딸들도 구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자신에 대한 심판 뿐 아니라
자녀와 다음 세대에 대한 마음에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결국 자녀들을 심판 가운데 건져낼 수 있는 것은
자녀들 스스로가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심판들이 전혀 비인격적이지 않은 이유는
살아남을 이들과, 심판 받을 이들 모두
그들의 행위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겔14:22)

이 말은 두렵지만, 감사한 말씀입니다.
살아남은 이들..
주님을 여전히 바라보는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 주님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은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라 구원받을 몇몇 아들들과 딸들이 그 안에 살아남을 것이다.
너희가 그들의 행동과 행위를 보면
모든 재앙에 대해 너희가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겔14:22-23)

매일 토닥거리고, 아이들을 위로하고 혼내고 다시 품어주는
일상의 반복을 통해
정말 바라는 것 한가지는
이 아이들 스스로 주님 앞에 서는 날입니다.
세상속에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사람들은 어리석다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발 앞에서 우린 서로가 서로를 통해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p.s 아프리카 잘 다녀오겠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는 글이 올라가는 날짜와 시간을 예약해둘수가 있어서
미리 묵상글을 써두고 떠납니다.
<노래하는 풍경>
https://www.facebook.com/SingMyLoveNphoto

오늘은 여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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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아침식사를 하며
어릴적에 온유 목소리를 녹음한걸 들었습니다.

‘월요일’ 발음을 못하는 4살 온유 목소리에
7살 온유는 꺄르르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오늘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삶과 시대의 문화에 중첩되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삶을 진지하게 살아보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서 오늘을 돌아보면

젠체하는 모양이 얼마나 유치하고 부끄러울까 두렵습니다.

 

오늘부터 사람들에게 투웬티(years) 첫번째 작품을 전달합니다.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작품전달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상당합니다.
그리고 너무 무겁고 큰 작품들이라 생각이 많습니다.
다음에는 부담없이 걸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하겠다.
내 작품만이 아니라, 여러 좋은 작품들을 협업해서 나누어야겠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나는 오늘도 4살 아이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월요일’을 발음하지 못하는 아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빈틈없이 일을 진행하거나
시기를 조금 늦추어서 시작했으면 좋으련만

마음이 이끄는데로 행동하기 일쑤입니다.

 

망설이다가도 한 걸음 떼지 않는것보다
서툰걸음이라도 이어져야 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언젠가 아이는 자라서 7살이 되고
오늘을 회상하며 웃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