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신앙이
옳은 선택 같지만
이 또한 답이 아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말은
먀냥 억지스럽거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욥에게 일어난 일의 실상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옳고 틀린 기준으로 상황에 들어가 본다면
욥은 억울하지만 그들의 말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옮고 그른것,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인가.
이런 이유로 내 마음과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마을의 재편성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마을 모임에서의 나눔.
왜 우리가 만났는지.
짧은 기도속에 눈물이 났다.
감사한 만남과 감사한 은혜.
언젠가 호주에 머물때
주님께 날마다 물었다.
왜 제가 이곳에 왔으며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주님은 작은 답을 들려주셨다.
생명이 살아나고, 자살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고백들을 듣게 하셨다.
선교사들과 선교지에서의 놀라운 만남
내가 있는 곳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지만
내게 보이지 않아도
나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믿음만을 보시지 않는다.
행동과 행위와 정의를
이방 사람과 고아와 과부를 향한 태도를 보신다. (렘7:5-6)
믿음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사랑하는 것들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