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마17:4)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해같이 빛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러시아 코스타에서 청년들은 주님의 은혜 앞에
엎드려 기도했고, 뜀뛰며 찬양했다.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지만 어김없이 산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한숨이 가득하다.
때때로 미소짓고 웃어보지만
내 안에 허기짐을 만나게 되고
어찌할 수 없는 상한 심령으로 몸부림친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의 영혼의 갈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경험한 사람은 그 기쁨을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주님을 갈망한다는 것이,
주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이
어떠한 영광과 기쁨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기억하며
부분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대조를 이룬다.
모세와 엘리야를 대신해서 강도 둘이 있었고,
이곳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누군지 알지 못한다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났다.
너무나 상반된 이 풍경속에서
예수님만은 변함이 없으시다.
예수님은 영광스런 자리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내다보시고
십자가의 자리에서 다시 부활의 영광을 내다보신다.
우리는 영광스런 자리에서
주님을 고백하지만
고난의 자리에서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적절한 좋은 환경을 구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도
주님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
믿음은 무엇인가?
통회하는 심령.
마음이 아플적마다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시간을 주신것이라면
나는 겨울을 보내는 나무처럼 살아가야 한다.
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