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에게 다메섹의 회심과 같은
주님과의 극적 만남이 아니었으면
그또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이방인에게 할례와 모세율법을 지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 말은 할례와 모세율법을 지켜온
1500여년간의 그들의 역사의 무게를
생각해야만 한다.
하지만 복음 앞에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분명하게 묻고 다시 서는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얼마전 안동에서 만난 이상동 장로의 이야기.
그는 자신의 아들이 가져온
성경을 읽고 복음 앞에서 자신을 새롭게 만들었다.
종들에게도, 자신의 옛습관 앞에서도, 감옥에서도..
쉽지 않지만, 복음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오랜 혈통의 문제는
신분과 높고 낮음, 남자와 여자. 수많은 문제들이
새롭게 정의되었다.
사람의 인식은 당대 문화를 뛰어넘기 힘들다.
오랜시간 젖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방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하게 하셔서
우리와 그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신 것입니다.” (행15:8-9)
성령을 주셨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말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 그것으로
우리는 주 예수의 은혜로 받은 구원을 증언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신 것보다 크신 증거가 무엇인가?
성령님이 계신 그 마음을 믿음으로 깨끗하게 하셔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우리를 가깝게 하셨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왜 우리를 택하셨는지?
과연 이런 나를 통하여 어떤 일을 하실지에 대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에 멀리 있었던 나를 부르셨고
내 안에 거하심으로 이제 나를 깨끗게 하셨다.
곧 나를 사랑하셨고, 사랑하시며, 사랑하실거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