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의 제자들,
가이사랴의 제자들,
그리고 아가보라는 선지자까지
바울에게 반복적으로 말한다.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당신은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가지 마십시오.” (행21:11-12)
성령님은 그들에게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내다보게 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판단은
둘로 나뉜다.
나는 은사를 가진 많은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바울이 경험한 이 일을
생각보다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이 본문이 가지는 왜곡들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일하시기로 작정했다.
드러나 보이는 은사자가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역설적인 상황은,
은사는 주신 감동을 그대로 믿어야 하지만
그것이 또한 정답은 아니다.
성령하나님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도구인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기준이 아니라면
내게 아무리 유익해 보이는 길이라도
분별이 필요하다.
바울에게 앞으로 일어날
고난과 핍박에 대한 예언은
틀리지 않았지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바울은 단순하게 결정했다.
주님의 마음을 따라 결정했다.
내 삶의 위태로움 앞에서
나는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가?
이쪽도, 저쪽도 답이 아니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음성이
답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