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길은 단순한 듯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다.
전에는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할 수 없었던 일이 가득하고
전에는 쉬워 보이고 간단해 보이던 일이
나중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제자들의 심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세 제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변화산에 오르셨을때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아는 것 같았는데, 손에 닿을 것 같았는데
너무 낯선 상황들을 만났고
무리의 조롱과 시비와 논쟁이 붙었다.
변화산에 머물기를 원하는
이유는 이런 다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을 이해충돌과 갈등, 다툼이 가득하다.
하지만 하나님을 외면한 에덴의 동쪽은 어쩔 수 없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막9:19)
주님은 탄식하셨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어떻게든 하실 수 있다면
제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 (막9:22)
전에는 이런 부탁도 유효했고
예수님의 옷깃을 만지는 자도 구원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는 장면이 전환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을
말씀하셨고, 이제 죽음에 임박했지만
무리와 제자들은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인다.
믿음은 무엇인가?
무력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저희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했습니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9:29)
같아 보이지만 다른 문제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 뿐 아니라 인생의 문제도 기계적이지 않다.
방정식처럼 답을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마다 주님의 마음을 구하고, 주님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예수님의 절박한 마음을 따라
내 영혼에 손을 대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