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롬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이전에는 공격할 수 없었던 바이러스가
인간 체온의 장벽을 수월하게
넘게 된다는 개념이다.
날씨나 기후가 각각의 개념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바이러스의 장벽을 허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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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나 기도는
중요한 영적 흐름이며
아버지와 자녀의 특별한 대화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열거나 닫을 수 있는 놀라운 열쇠와도 같다.
그러나 성경은 영적인 것을
종교적인 차원으로 가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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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말이나
분노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행동과
이어져 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엡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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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그리스도인의 것과 비 그리스도인 사이의
장벽은 맘몬의 가치 앞에서
허물어진지 오래인 것 같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해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소리들 앞에서
성경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이들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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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기후 위기를 생태 살해, 혹은
미래세대를 죽이는 후손 살해라고부른다.
기후가 단순한 기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의
Postericide를 경험하게 되지는 않을까?
물론, 이 아픔의 시간 또한
하나님의 주권이 무너진다는 뜻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