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말을
가까운 이들과 가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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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대해야 옳은 일인가?
이 질문을 십수 년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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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에 맞지 않는
무례한 일들을 당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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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증명할 수 있는,
상대의 부당함을 드러낼 수 있는
증거들을 드러내 보이는 방법.
부당하거나 무례함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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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행동할 경우
나의 정당함은 증명할 수 있겠지만
내 목적이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에
있지 않아서 생각에만 머무른다.
이미 타인에게 수없이 당했을
상처와 아픔과 외면에
결정타를 날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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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관심은 나를 해하려
하는 자에게 용서의 방법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나의 정당함을 포기하려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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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시 3:1)
다윗은 그의 대적을 피해
자신의 성에서 급하게 도망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대적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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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이 문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들의 반역에 그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 피난길에 올랐고
다음을 도모했다. 그러나 광야에
머무는 동안 잃었던 그의 믿음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고
주님의 인자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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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곤궁한 시간에 내가 물어야 할 질문은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