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독한 회의론자이며,
동시에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간혹 걷다가 멈칫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인지,
주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지 않습니다.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알 수 없는 회색지대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말씀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결별하는 장면입니다.
롯이 택한 땅은 애굽땅과 같았고
여호와의 동산 같은 땅이었습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선택해야 할 노른자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결말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택한 땅을 주목해서 보게 됩니다.
무엇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내가 가진 생각과 판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선택의 기준은
이 일에 하나님은 어떤 마음일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정한 여러 선택들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혹스러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련해 보이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미천한 내 인생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믿음의 결정과 도약을 뛴다고 해서
눈앞에, 혹은 손에 잡히는 이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과 도약을 주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남편이 되었고, 아빠가 되었지만
우리 주님은 여전하십니다.
주님이 변하지 않았기에
믿음의 결정과 도약도 여전하길 두려운 마음을 품고 기도합니다.
믿음의 결정과 도약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결정과 도약을 한 사람은 얼마간
얼마나 마음이 두렵고 떨리며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인생을 걸어가는 이유는
인생을 경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정 후에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은
세상을 긍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너무도 냉혹해서 낭만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자주 생각합니다.
사울 왕을 피해 다윗이 도망할 때
사람들은 다윗을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제대로 믿고 있었을까?
도저히 성취되지 않을 오랜 전설처럼 여기고 있진 않았을까?
사람들은 다윗을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제대로 믿고 있었을까?
도저히 성취되지 않을 오랜 전설처럼 여기고 있진 않았을까?
피해 망상을 가진 절대 권력자는 다윗을 두려워했지만
사울왕의 수하를 비롯해서, 다윗의 추종자들까지
이성적인 판단을 가진 정상인이라면
이성적인 판단을 가진 정상인이라면
다윗이 왕이 된다고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도망하며 겨우 자기 몸 추스르기도 힘든 도망자의 인생을
도망하며 겨우 자기 몸 추스르기도 힘든 도망자의 인생을
그렇게 상상한다는 것은
결론을 내다 보지 않으면 너무 많은 비약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독한 회의론자이지만,
누구보다 기뻐하며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이유는
절망 중에도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이유는
절망 중에도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4)
기름부음 받은 다윗의?인생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주님은 여전히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