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글을 썼습니다.
수영이는 병실에 누워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글은 이 아이에게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에 아이는 세상과 연결되었습니다.
늘 집안에만 있다가 19살에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소원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학기당 최소학점을 듣고 있지만
어느새 4학년이 되었습니다.
언제 졸업할 수 있을지는 요원하지만
이미 대학원까지 공부할 것을 단단히 마음먹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영이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마다 역할이 다른 것처럼
수영이는 자신이 쓰는 글을 통해 주님이 일하시길 기도합니다.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만났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 뿐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몸을 고정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사진을 찍어 보지 못한 이 아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예쁜 미소를 가졌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년에 초등부 학생들에게
설교를 할 기회가 한 번 있었다고 합니다.
가슴 터질만큼 기뻤고,
그때는 생각보다 말이 잘 나와서 감사했다고 합니다.
수영이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음식을 먹게 되면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걸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걷게 되면 평소보다 말이 잘 터져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걸으며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날씨는 아직 추웠지만 햇볕은 어느새 봄이었습니다.

나는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색채의 연금술사라는 찬사를 받는 화가 조르주 루오
그의 전시회에 적힌 작은 문구앞에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린 작품 아래에
“보는 사람이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될 만큼 
감동적인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
루오의 유일한 소원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너의 글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너의 글을 통해 한 사람이 변화된다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잔치가 벌어질 거야.
한 사람의 가치는 우리가 이해하고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같이 천국잔치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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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앙을 부양할 어떠한 것도
내 본성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무장한 의를 벗어던진다.
박해를 받으나 결코 자포자기 않는다.
불행을 견디나 번민에 빠지지 않으며,
그의 고행과 흔적을 몸 도처에 간직한다.
원수들이 무슨 짓을 해도 그의 이름을 위해
견딜 은혜를 받은 자를 무엇도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기도는 많은 이름들을 부르게 하고
뉘우쳐야 할 것이 피어오르니
곧 새벽도 담을 넘어버린 후이니이다
나는 아무도 밟지 않는 시간을 깨워
나의 두 손이 당신을 위해 있음을
그침없는 눈물로 말하리이다.
나의 흔들림이 물결치며 
고요를 갈라놓을지라도
어둠에 뒤섞이지 않으리로다
더 깊은 빛을 향해 두 눈을 열리이다
영원이 온 순간마다 깃들어 있음을
주여, 새로운 아침으로 말씀해주옵소서

글.  홍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