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아빠가 언제 야단 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물으면, 하나씩 이야기합니다.
거짓말 할 때, 짜증낼 때..
하지만 실수로 잘못한 것은 야단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실수로 무언가를 망가뜨렸다고 하더라도
돈을 주고 고치거나 살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만 마음과 태도의 방향은 눈여겨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주의를 계속 주었는데도 계속 하다가
실수로 잘못한 것은 실수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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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야단 맞는지 예측가능해야만?
아이들 뿐 아니라
나도 일관성을 지킬 수 있을거란 생각에서 입니다.
하지만 일관성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제도 소명이는 발차기로 전기 스위치를 스무번도 넘게 두드렸고
잠이 오는 시간에는 양치질을 하지 않겠다고 이리저리 도망다닙니다.
가끔 매를 들기도 하고
가끔 야단을 치기도 합니다.
훈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때마다 우리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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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적 우리 아이들 못지 않는
심한 장난꾸러기였습니다.
막내 외숙모가 피아노 학원을 하셨는데
요셉이는 못 가르치겠다고 울면서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늘 뛰다가 넘어져서 얼굴이며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고
깁스를 해보겠다고 2층에서 일부러 뛰어내린 적도 있습니다.
친구는 나와 장난치다가 똥통에 빠져서 우리집에 따지러 찾아 왔었고
집안의 장농에 숨어서 이불위에 불장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장난치다가 손톱이 빠지기도 했고
발목에 유리가 박혀서 수술한적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통지서에는 주의가 산만하다는 문장이 빠지지 않았고
플레밍의 왼손법칙을 왼발법칙으로 바꿔적는 등
중요했던 학교 시험의 답안을 장난치기도 했습니다.
친구의 생일이라고 집에 있던 가죽소파를 가져다가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거나 황당했던 사건 사고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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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매를 맞아보거나
혼나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은데
그렇게 하셨습니다.
언제나 나를 믿어주셨고 나를 긍정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에는
‘방학기간이나 보충수업, 자율학습 시간에
학교에 있고 싶지 않다’는 내 의견을 들으시더니
작은 쪽지를 써주셔서?전교생중 유일하게 혼자 귀가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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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계가 필요없다는 말도, 이런 방식이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런 과정을 통해
내 마음이 만들어진 수많은 별들이 있습니다.
한없는 믿음과 신뢰,
기다림, 인내, 책임과 지지.
아이들을 더욱 믿어줘야 겠다는 마음.
신실하신 주님의 뜻과 계획,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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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르다 보면
잘 되라고 훈육하고
잘못 되지 말라고 훈육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부모님이 나를 향해 기다려주고
지지해주고 긍정해준 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게 무엇일까를 한 번 더 묻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구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맡긴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