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후미진 골목을 거닐며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빨래나 대문과 같은 사진을 자주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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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려 있는 빨래를 보면
아빠와 엄마의 취향,?
아이가 몇 명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곳에 살아가는 풍경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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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사진을 찍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일단 문의 색과 무늬도 궁금하지만
대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나뉘는 신비,
그 이면의 풍경을 또 상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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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캘린더 주문서를 넘기며
글자들을 보고 기도하곤 합니다.
대단하지 않은 정보들 속에
나는 이것저것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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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오늘 아침 문득,?
반가운 이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8년 만에 듣는 목소리.
주님은 이 아침의 기도 시간 속에
이런 뜻밖의 만남을 허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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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목소리를 들으며 안부를 묻고
이유를 알 수 없어 아픈 시간 속에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이 시간,
주님이 허락하신 가시조차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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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의 많은 어른들이
나중에 좋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것을?보게 됩니다.
나는 그들의 모든 삶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나중에 잘못된 결정과
잘못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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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탈 없이 승승장구하는 삶,
우리는 얼마나 바라는가요?
내 인생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인생도
별일없이 자라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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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착각할 수 있는 것은
은혜를 받으면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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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불신에 빠졌으며
용기를 가진 엘리야는 용기를 잃었습니다.
바울조차 자고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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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내가 가진 가시는
주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할 뿐 아니라
그 연약함을 통해 끊임없이
주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신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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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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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인생,?
다윗의 시편들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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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행과 어려움이
주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 내가 드릴 기도는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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