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헬라파와 히브리파 사이의 알력이 생겼다.
현실속에 우리는 계속 낙담할 뿐이다.
문제는 적절하게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정안에는 늘 문제가 있다.
사랑해서 만난 사이인데
문제가 없을줄로 생각했는데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문제가 생겼다고 그자체를 비난하게 되면
문제는 더 큰 문제로 불어난다.
문제가 생겼다는 게 근본적인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는게 문제다.
생긴 문제는 적절하게 풀어내면 되는 것이다.
사도들은 구제사역으로 인해
말씀 사역을 소홀히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했다. (행6:2)
이는 기도와 말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기도와 말씀만큼 소모적이고 실용적이지 못한
것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면
주인을 알아 가르치고, 그 분과 대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한편으로
기도와 말씀이 중요하다고 해서
나머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구제사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이를 따로 충원했다.
오직 기도와 말씀에만 몰두한 것은
말씀을 전하는 사도의 역할로의 구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일을 맡길 때 지혜롭기만 한 사람이면
실용적인 선택만을 따를 수 있다.
성령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처리가 탁월하지 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곱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자들이었다.
지혜와 믿음과 신앙, 삶의 모습의 관계.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어지러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님이 부으시는 믿음과 지혜와 존경받을 어른이
세워지기를 기도한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이런 시간을 통해
유대교의 지도자였던 제사장 무리들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제사장 무리들을 말과 말로써
설득하고 포섭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들의 변한 삶을 통해
그들 안에 ‘진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를 지켜본다.
아무리 말을 해도
말 자체는 힘이 없다.
수많은 말들 속에 걸어가는 걸음. 삶을 통해
사람들은 진짜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