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비본질,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나는 자주 본질과 비본질을 나누어 생각한다.
이것은 본질, 그렇지 않은 것은 비본질.
우리가 본질이라 믿고 있는 것들중에
그렇지 않은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지금의 예배의 순서와 형태는 은혜롭지만
그렇다고 다른 형태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리고 종교개혁을 거치고,
영미권 선교의 흐름에 따라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전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어쨋든, 생각은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삶에서 적용할 때는 그렇게 단순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적용할 때는 차라리 본질과 비본질 보다는
상대방이 시험에 들지 않는 수준을
맞추는게 좋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너희는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 (행15:28)
이 말은 너희는 유대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말과 같다.
구원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대인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구원과 관계있지는 않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할례를 받았다.
 
이 지점이 기억해야 할 점이다.
구원에 속한 문제가 아니기에
모든 것이 비본질적인 것이고
그래서 의미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비슷한 이유로 야고보를 포함한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앞서 이야기했던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머지 한 가지는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명했다.
이는 당시 이교도 제사와 관계 되지 않음으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함과 동시에
기존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전에 우리가 행하는 습관과 전혀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닌 점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자유로울 수 있지만
스스로 자유를 누리지 않을 지점은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너희도 이같이 하라.
무엇이 옳고 그런가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쫓으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