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무척 장난꾸러기였습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긴 고무줄로 놀고 있었지요.
골목에서 아이들이
긴 고무줄로 놀고 있었지요.
보통의 놀이 고무줄이 아니라
커다란 트럭에 짐을 짜맬때
사용하는 작업용 굵은 줄이었습니다.
사용하는 작업용 굵은 줄이었습니다.
뱅글뱅글 돌리는 그 사이를
아이들이 아슬하게 피해 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전거를 운전해서
그 사이를 통과해보겠다
그러고는 달렸습니다.
운 좋게 앞 바퀴는 통과했지만
뒤가 걸렸던지, 탄성 때문인지
나와 자전거는 높이 날아올라서
얼굴 전체를 아스팔트에 갈았습니다.
얼굴에 피가 뚝뚝 떨어진 채로
부모님이 일하시는 가게에 찾아갔더니
손님들 때문에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어서 집에 들어가서 약 발라라.”
약을 발랐는지, 그대로 피곤해서 잠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장난꾸러기였고
매일 크고 작은 사고를 쳐댔습니다.
매일 크고 작은 사고를 쳐댔습니다.
친구는 내가 뛰어다니던 곳을 따라 밟다가
똥통에 빠지기도 했고
다리에 깁스를 하고 싶어서
2층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수감자 자녀들을 만났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도 했고, 사진전을 구경하거나
밤기차를 타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도 했습니다.
찍은 사진을 가지고 함께 모여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공통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장난꾸러기였던 나와 비교가 안될 만큼
아이들이 너무 착해 빠졌습니다
장난꾸러기였던 나와 비교가 안될 만큼
아이들이 너무 착해 빠졌습니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천성적으로 착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아이들은 의지적으로, 의식적으로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지.’
‘부모나 아이나.’
‘부모가 그러니까 아이도 그렇치.’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 앞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침묵해야 했을까?
그들의 착한 모습 속에 나는 슬픔을 상상했습니다.
나는 얼굴을 갈았지만
부모님이 바쁘셔서 약을 발라줄 여유가 없었지만,
항상 그 자리를 찾아가면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누군가 있어야 할 자리,
그 자리가 부재한다는 것은
그 자리가 부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아픔일까요?
토크 콘서트에 온 분들에게 나눈 일부입니다.
물론 그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이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으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너머에
주님이 일하실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늘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불편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감사한 이유는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막내이지만
주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말 할 수 없는 기쁨..
주님 앞에서 작은 조각처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서 작은 조각처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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