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믿음의 시련이 아니더라도
아픔의 시간을 보낼 때면
당연하게도 아픔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십 대 초반에 기도했습니다.
이 감정들이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위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테니
많은 감정들을 알고 싶다고..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픔은 아팠습니다.
기도해서 얻은 감정이라고
가짜 감정이거나 가짜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했다는 건 까맣게 잊고
도리어 주님께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걸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이 믿음이
인내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 인내는 우리를 온전하고 성숙하게 만듭니다.
이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대신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아픔의 시간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유효한지
주님과 함께 걷기 위해
왜 이 시간이 필요한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이
당신을 위한 시간이라고도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이 시간에도 여전히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도 여전히.
<노래하는풍경#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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