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해도 다 소용없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소용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 변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고,
기도를 주문처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화가 중요하지만
변화 때문에 기도하는 걸까?
변화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떡을 먹고 배부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나를 돌보는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없는가?
그게 자기를 위하여
형상을 만드는 목적이다.(신4:15-24)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역사를 살피면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 는 몇 개의 말씀을 들어
시각적 예술에서 청각적 예술로(말씀중심, 음악..) 옮겨갔다.
사실 이 말씀은 형상 그 자체에 주목한다기보다는
우상숭배에 관해 금하는 말씀이다.(신4:15-24)
당시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보면 충분히 알 수 있고,
성경의 수많은 말씀들
예를 들면, 성전을 건축하는 장면에서
하나님은 직접 형상을 새겨넣을 것을 지시했음을 확인하면
형상 그 자체가 문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형상의 문제는
결국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드는 데 있으며
아간의 범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탐심과 우상숭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골3:5)
나아가 탐심은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우상처럼 대할 수도 있다.
거룩한 행위를 쌓아
나의 소원을 이루는 자동판매기로 만들 수 있다.
그들이 주님 아닌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의 징계 방법은 놀랍다.
그들이 이방 땅에 쫓겨나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다.(신4:27-28)
우상을 섬기던 백성들을 징계하는 방법 하나는
그대로 우상을 섬기게 내버려 두는 일이다.
세상에 내버려 두는 것,
세상의 가치에 내 마음을 온전하게
맡기게 되면 나는 물결을 따라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신4:29)
구원의 길은 이방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이라던지
조금 더 윤택한 삶을 약속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그 자체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기도의 목적은 변화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것
그 분과의 관계에 우선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분과의 관계에 우선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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