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기도 모임에서
기도 제목 중 하나로 갑상성 기능 저하가 있어서
컨디션 조절 잘 하기를 기도제목으로 냈습니다.
연말로 갈수록 해야 할 일들이 많아져서
급격한 체력저하와 피로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모임 방에 제 이름의 기도에 갑상성 기능 저하 치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글을 몇 번 보다가
굳이 기도 제목을 정정했습니다.
정정한 기도 제목 사이에
큰 의미의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한 번도 기도해본 적 없는 제목이기도 하고,
누군가 이 기도제목을 보고 기도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겠지요.
갑상성 기능 저하증은 벌써 5년 가까이 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기도와
가족이서 매일 기도하는 시간에도
갑상성 기능 저하증이 없어지기를 기도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치유가 되면 좋지 않을까?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도리어 이런 것들은 감사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네팔에서 큰 강진을 경험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와 검사를 제의받았을 때
이를 거절했습니다. 덕분에 한동안 비슷한 진동이 느껴지면
긴장이 되거나 놀라고 식은 땀이 나거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때마다 네팔을 기억하고 기도하라는 주님의 마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해에 만든 캘린더의 제목도 네팔을 기억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경험을 했고, 그 기억이 강렬하더라도
오늘의 경험에 어제가 지워지는 것이 사람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20대 초중반, 하나님께 드린 기도.
세상의 모든 경험과 감정을 알게 해주세요.
오즈의 마법사에서 그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는 무에서 유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지요.
주님은 당신의 시간을, 피조 세계에 빛 비추셔서
우리로 당신의 뜻을 이루시며 기도의 응답을 만나게 하시겠지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는 날마다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연약함이 없으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나의 현실입니다.
한계, 연약함, 연약함에 틈을 내셔서 당신의 은혜를 날마다 비추십니다.
임마누엘. 주님의 이름이 내 평범한 일상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