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스케치북에 작은 네모를 그렸습니다.
작은 네모에는 내 방이라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비슷한 크기로
다시 네모를 그렸습니다.
네모 안에는 축구장이라 적었습니다.
또 그 옆에는 길쭉하게 네모를 그리고는
비행기 활주로라고 적고
주변에는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호수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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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찌감치 그린 네모에는 입구라 적고
주변에는 정원을 그려 넣었습니다.
입구에서 내 방까지 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이동 수단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스케치북의 절반도 그리지 못했는데
날이 저물어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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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지.
어딘가에 꿈을 적었습니다.
막연하고 관념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당장 성취할 수 없더라도
구체적인 꿈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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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꿈이라 말하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도 제목이나 소원은
더더욱 아닌 목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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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_어떤 공간?
그동안 공간을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공간이 있으면 그림 같은 다양한 작업뿐 아니라
기도 모임이나 예배가 가능한 작은 교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공간이 주어지면
활동 범위가 바뀌고 책임져야 할 일들 때문에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로 응답해 주실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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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때문에
여전히 기도하지 않겠지만
메모에 적지 말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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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는 여러 메모가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의 목록
급히 처리해야 할 것,
기억하거나 기도해야 할 목록들로 가득합니다.
어릴 적 스케치북에 작은 네모를 그렸던
동심은 현실에 밀려버렸습니다.
현실성 없는 일은 생각도 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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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과
기도하지 말아야 할 것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글을 적었지만
정작 나는 회의적인 현실의 지도에
서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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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메모지에
이것저것을 하하. 웃으며 적었습니다.
언젠가 세상 떠날 날이 되어
내가 적어 놓은 꿈이 하나도 안 이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시시콜콜 하하하.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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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풍경 #1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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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밀린 #동심회복작전 #스케치북에그리는네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