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백석전문대학원 미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내가 미술을 공부하게 된 사연은 너무 긴 이야기다.
미술을 전혀 전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림 조차 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미술을, 그리고 박사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은 엄청난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다.
매 년 학기초에 미술학과 사람들이 MT로 모인다.
밤이 되면 간단한 미술도구를 주고 짧은 시간에 그림을 그려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올해로?3학기차라, MT를 두 번 가졌고, 그림을 두 번 그렸다.
나는 파스텔로 아둘람이라는 동굴 하나를 그렸는데
Sola갤러리의 이영주 선생님은 그날 내가 그린 그림에 감동했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그룹전으로 이 그림을 전시하고 싶다고 제의하셨다.
MT에서 그린 파스텔 그림 한 장이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된?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나는?어릴적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하지만 그것은 열망일 뿐, 나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나는 선 하나 제대로 긋지 못했고
눈이 색약이라 피부색 하나 적절하게 칠하질 못해서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망과 함께, 재능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취미로라도 그림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능도 없는데 비싼 미술용품을 구입해서 그림을 그리기에
그 일은 내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서 지금껏 미술도구 하나 사본적이 없다는 사실이 지금 내게 가장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정직하게 말해서 이번 전시회를 열기 한 달전쯤 난생 처음으로 아크릴물감이란 것을 구입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처음으로 이젤과 캔버스를, 유화물감 따위를 사게 되었다.
그 때부터 화방의 직원들에게 재료 사용법을 질문하며
밤을?지새우며 물감과 재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수면시간을 반절로 줄였더니 어느?새벽에는 그림을 그리다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그림을 그리며 내가 무엇을?그릴 것인가를 정하게 되었다.
내 마음에 떠오르는 풍경들을 생각하며 그려대다가
가장 많이 그리게 된 한 사람이 있었다.
‘유누스이삭’이란 이름을 가진 아프리카 여자?아이다.
눈물이 별로 없는 내가 사진을 찍으며 많이 울었다.
결국 그 아이는?수인성 질병이 원인이 되어 숨을 거두었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내보이며 울었다.
그렇게 눈물 흘린 곳에 열 개가 넘는 우물들이 만들어 졌다.
나는 사진이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사진은?일종의 기도이며?언어다.
온통 흔들린 사진이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심을 사진에 담으면
사진은 언어로써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진처럼 그림도 그렇다는 것을 나이 마흔을 바라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피부색을 정확히 찾아낸다거나
선을 정확하게 긋는 기술적인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린 그림 안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심을 담으려 애썼다.
그림을 그릴수록 이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려 나갈수록 먼저 그렸던 그림이 엉망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새로운 하나를 그리면, 이전에 그렸던 하나는 버렸다.
‘창작할 때는 비평가가 되지 말라’는 말을 따라
이제 내가 그린 그림은 더이상 보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림을 그리며, 그림을 그린다는 게 무척 영적인 작업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진이 빼기 작업이라면, 그림은 더하기 작업이다.
더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지칠만도 한데, 그림을 그릴수록 무언가를 또 그리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다.
그만큼 말하고 싶은 무엇이, 말해야 할 무엇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단 뜻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