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요즘 자주 이야기하는 문장이 있다.
“너가 별나고, 내가 별나고, 우리가 별난거야.”
내 관점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아닌 모든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내 관점이 일반적이지 않고,
나아가 별나기까지 하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수로보니게 여인, 이방의 여인은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긴 이방인이었지만
오늘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흔히, 나의 관점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대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막7:27)
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옳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성경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 아래 있던 개는 이제 자녀와 함께 빵을 먹고
이방에 구원의 빛이 비쳤다.
내가 옳아 보이는 상황까지도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구하겠습니다.
그러면 내게도 주님의 구원의 빛이,
땅 끝에 있던 내게도
날마다 주님의 빛이 임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
특별한 행동을 하신다.
그를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신다. (막7:33)
특별한 주님의 만지심.
어쩌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시대,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제자들조차 도무지 알아 듣지 못하는
그들을 향한 주님의 상한 마음,
안타까운 몸짓은 아니었을까?
에바다.
이는 열리다라는 뜻이다. (막7:34)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아버지의 마음을 빛 비추어
보이길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