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자는 모든 유업을 물려 받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살아가야 한다.
비본질의 숲을 걷어 내면 가장 본질적인 것,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인한 십자가사건,
그 예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사귐을 갖는 것.
종과 아들이 함께 자라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기름부음 받았지만 다윗은 여전히 광야에 머물렀다.
나발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으려 했지만
아비가일은 다윗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었고
그는 칼을 거두었다.
매일의 삶앞에 나의 주인이 누구이며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속략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고 하시고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분이 누구신가?
보이는 것들로 가득찬 세상앞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내 안에 있다.
언젠가 군대 입대할 때
‘나의 정당함을 포기하라.’는 생각을 품은 적이 있다.
군대는 어쩔 수 없는 곳이었지만
매일의 삶에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정당하지 않는 가치들 앞에서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옳은 것이기에
나는 침묵하며 주님이 내게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 것,
나는 어느 세계를 밟고 서 있는가?
나의 국적은 어디인가?
허다한 구름떼같이 많은 증인들을 바라보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대단하지 않은, 일상의 삶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