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작은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주일학교에는 담당 교역자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여름성경학교를
어떻게 경험하게 하면 좋을까?
연합수련회라도 참여해야 할까?
일 년에 고작 한 번인 시간이지만
그냥 보내기엔 아까울 만큼
중요한 시간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 큰 청년들도 그 시간에
기도하며 주님을 만나기도 하고
믿음이 뜨거웠다가도
며칠 뒤엔 잊어 먹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평소에는 쉽지 않는 간절함을
그 시간에 가질 수 있지요.
청년시절,
무척 신앙이 뜨거웠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옮긴 직장 때문에 예배를 빠지다가
서너 달 지나서 결국 교회를 떠났습니다.
예배나 기도의 부재가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예배의 문제라기 보다는
마음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며칠전, 북한에서 사역하시는 자비량 선교사님을
만나 식사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고난 당하고, 예배드리지 못하는 환경을
바꾸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는 북한 성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예배의 환경이나 상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배자의 마음과 태도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으로 기도합니다.
여력이 있는 교회는 영상으로도
괜찮은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영상으로의 예배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핸드폰으로 영상을 중계하느라
깨끗하지 않는 음향과
여러 조건 때문에
아이들의 수준에서 보면
아이들의 수준에서 보면
지루하거나 너무 평면적으로
다가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교회 환경 속에서 자라
성경과 신앙을 이야기하지만
말 그대로 아직 아이입니다.
세상살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서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나 어른들을 통해
하나님의 상을 그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몇 주간 집에서 영상을 통해 예배드리며
찬양할 때는 손을 들고 찬양을 하고
예배를 마치고는 아이들을 안거나
손을 얹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말해주었습니다.
“예배는 보는 게 아니야.
예배는 드리는 거란다.
우리가 무엇으로 드릴 수 있겠니?
하나님께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단다.
드릴 수 있는 건 내 마음이야.
아빠가 손을 들어 찬양하는 것은
내 마음의 진심을 드러나 보이는 것으로
올려 드리는 것이란다.
마치 마음을 담는 그릇처럼..”
평면적인 그림이 아니라
질감이 드러난 그림을 좋아합니다.
사진의 결과물이 평면적이기에
그림을 그릴 때는
질감이 느껴지는 재료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평면적인 화면 속에서 드리는 예배에
어떤 질감을 더하면 좋을까요?
영상으로 처음 예배를 드릴 때는
처음 경험하는 복합적인 감정때문에라도
간절함이 더해지겠지만
이런 시간이 반복되면 이 또한 당연하게
여겨지겠지요.
만일 상황이 장기화되어
계속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이나 상태보다
예배자의 마음과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시간이 계속될지 모르지만
평면적인 예배에
어떤 질감을 더하면 좋을까요?
청년 시절, 자전거를 타고
새벽예배를 다녔습니다.
30 분 정도를 패달을 밟으며
기도하며, 찬양하며 교회를 향했습니다.
예배는 그날의 상황에 따라
좋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항상 뜨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며
주님을 간절히 부르짖었던 시간입니다.
어제 소명이가 들려준 이야기가 감사했습니다.
“아빠, 하나님은 너무 무서운 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너무 사랑스러운 분,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많으신 분이예요.”
언제까지 서로가 거리를 두고
평면적인 예배를 드려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그 속에서 기대하며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십니다.
그분이 이 시간을 통치하십니다.
주님이 없어 보이는 시간 속에
주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주님이 주신 온전한 사랑은
날마다 두려움을 쫓습니다. (요일4: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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