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경험한
토대를 전부라고 생각한다.
흔히, 확증편향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를 사용하는데
‘거봐. 내 말이 맞잖아.’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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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세계 속에서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내가 동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그 생각을 관성을 따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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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거나
나와 다른 의견을 적극 수용하지 않으면
누구도 이 사고에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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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선을 넘었다.
제사장으로 제사를 멸시했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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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니와 비느하스에게는
태어나면서 가진 소유이며
자신의 영역을 활용할 기회라고
여겼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위임한 자리였다. (삼상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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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이 둘은 이율배반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가 하나를 비인격적으로
떠미는 형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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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이성과 정서를 따라
당연한 듯 선택하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선택 속에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내버려 두기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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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엘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걷던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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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2:30)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셨다.
하나님의 시간은 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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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복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엘리의 가문에는 앞으로
환난과 함께
노인이 하나도 없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다. (삼상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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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여호와께 자신의 심정을
통곡하며 기도하다
시대 속에 아파하는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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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자라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삼상3:19)
어둠 속에 빛.
그 빛의 시작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무엇이 복인지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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