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우리 현실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차라리 돈 십만 원이
오늘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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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얼마나 헐값에 거래되는가?
그러나, 지구 위에 가장 큰 부자나
권력을 가진 이도
사고 싶지만 살 수 없는 가치이다.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가진
믿음의 진위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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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도들이
목숨을 위협받았을 때도
결정적 순간에도
그들이 당당했던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원에 대한 소망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의 첫 열매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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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사망이다.
그러나 사망을 죽게 만든
사건으로 인해 구원을 상속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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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구원의 투구는
평시에는 알지 못하지만
격전 중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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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상고할 필요가 있다.
과연 구원과 믿음의 주체가 우리의 믿음인가?
교회나 그리스도인, 직분이
우리의 구원을 견인하지 못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나
성경은 믿음과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므로
자랑하지 못함을 말한다. (엡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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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투구는 우리의 노력으로
획득한 구원열차의 티켓이 아니다.
동시에 구원이 흔들리지 않는
사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은 교회의 기초가 된다.
구원의 투구는 그저
구원의 증표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격적인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속에
한 걸음, 또 한 걸음
구원의 투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걷게 한다.
어느 나라에 속한 백성인지를 말해주는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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