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있는 말을 피하는 편이다.
“아빠, 100%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가끔 뒷자리에서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피식 웃게 된다.
내가 종종 했던 말을 이제
아이들이 말하고 있다.
과연 내가 하는 말이 완전할까?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약속하거나
스스로의 계획도 방어적으로 정하게 된다.
약속을 했다면 지켜야 하는데
과연 나는 지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작용한 것 같다.
“다 잘될 거야. 괜찮아. “
사람들의 위로나 응원도 비슷하다.
그런데 성경의 확신에 찬 선언은
내게 구원의 메시지와 같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말을 신뢰하게 된다.
마치, 네 병이 낳았다 하는 말과
구원이 임했다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과 닮아 있다.
“주님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 (시2:12)
나는 망할 수 있고, 엉망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수 있고
내 의지와 신념은 망가질 수 있다.
내가 이 땅에서 망해버려도
나는 그때마다 주님께 전력으로
도망칠 테다. 주님께 피하는 모든 사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복을 받을 것이다.
아멘.
#어디로피해야할까 #주님의날개그늘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