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랑이 아니라,
신랑의 친구로
그의 기쁨에 함께 한다.
세례요한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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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울이 말한다.
내가 감옥에 갇힘으로
누군가는 좋은 뜻으로
누군가는 내게 괴로움을
더하려고 복음을 전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기뻐하고 기뻐한다.
왜냐하면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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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한 상황이나
억울한 일이
그의 기쁨을 뺏지 못한다.
초월적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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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려고
발버둥 치고
죽여달라고
발버둥 치고
살고 죽는 것에
종종 애간장을 태운다.
자존심과 기질과 성격과
상한 마음과 곤한 걸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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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칼이 들어와도
아닌건 아닌거다. 라고
외치는 지금의 시대 정신속에서
정말 아닌건 아닌건가?
그 중심에 나로 똘똘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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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말한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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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일일까?
나는 무엇에 기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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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오늘도
내 길에 빛이 되어
갈 길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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