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라는 질문이 생겼다.
하나님은 심판으로 인해
옷을 찢고 애통해 할 것을 명하시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래하고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나아가 두려워하지 말고, 네 손에 힘이 빠지지 않게 하라고 명하신다. (습3:16)
3장 밖에 되지 않는 성경 속에서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하루 24시간 밖에 되지 않는 시간속에서도
울고 웃고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지 않은가?
하루에도 침노와 기쁨과 애통을 반복하는게 연약한 우리 인생이다.
오늘 말씀은 그저 평면적인 서술로만 읽히지 않는다.
성경을 지으신 분은 시간의 주인이시다.
그래서 성경이 선포될 당시의 대상을 너머
포로에서 돌아올 이스라엘 백성과
마지막 종말론적 회복까지 주님은 내다보고 계신 것이다.
주님의 시선으로 오늘을 살게 되면
나는 애통해 하지만, 동시에 기뻐할 수 있으리라.
“그때 내가 다리 저는 사람들을 구해내고
쫓겨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습3:19)
다리 저는 사람들, 쫓겨난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겠다고 하신다.
만일 스스로 구원을 생각할 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구원은 자신의 능력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서 이루어냈다고 여기겠지만,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구원 받기에 자격 없는 자라고 여기면?
“네, 주님 저의 연약한 인생은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저는 다리 저는 사람이며, 쫓겨난 사람입니다.
감히 왕의 잔치에 함께 할 수 없는 자입니다.
하지만 내가 주님과 함께 식사할 수 있고
손에 힘이 빠지지 않게 하고,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습3:15)
그 분이 내 안에 계시지만,
나는 종종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감을 느낄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때는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실뿐
그 분을 전혀 자각하지 않고
내가 왕이 되어 내 가운데 있거나, 그 분을 조종하려 들기 때문이다.
초청하라. 반응하라 내 영혼아.
주님이 주인된 삶.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 (습3:17)
주님을 생각하라.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라.
바쁘고 쫓기는 일상속에 멈춰 서서
주님을 얼굴을 구하라.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나는 주님의 장단에 맞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