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외식하는 자라고 엄히 말씀하신다.
외식이라는 말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얼굴에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연극배우를 가리킨다.
그들은 엄격한 종교규례를 지키기 위해
마시는 잔에 혹시라도 부정한 벌레가 들어갈 것을 염려해서
채로 걸러가며 정결을 지켰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킨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외식에 대해 예수님은 일곱가지의 심판을 말씀하신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곧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심판이다.
나를 아찔하게 한 것은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을 두고 맹세한다는?것이다. (마23:22)
이 한구절은 내가 서있는 공간과 시간속에의 책임을 느끼게 만든다.
내가 살아가는 공기, 공간.. 주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주님은 단순히 도의적인 심판,
겉과 속이 다른 것에 대한 말씀에 그치지 않으신다.
후반의 말씀을 이어 보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선지자들을 죽인 것처럼
예수님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할 것이다.
누군들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사울처럼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열심을 내지만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있으면 나는 굳어지고 또 굳어진다.
성령님, 내 눈을 밝혀주세요.
내게 빛 비춰주세요.
모든 것이 주님께 속했는데
종교지도자들처럼 나는 자신의 잣대안에 주님을 가둬놓고
주님은 이것을 기뻐하실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기계적인 주님의 음성, 기억과 과거속의 주님을 산술적으로 추론하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나는 주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오늘 주님의 마음을 구하지 않으면 나는 어두워 보지 못하는 자이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그가 기뻐하는 예배는 무엇인가?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51:16-17)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사66:1-2)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
나는 오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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