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면 가장 어린 아이에게 묻곤 합니다.
“지금 선생님이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어?”
바보같은 고백이지만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야
왜 예수님이 어린양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모태신앙이라 어릴적부터 이런 가사의 찬양을 불렀을 뿐 아니라
찬양을 부르며 눈물도 흘렸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교회서는 직분을 맡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어른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담당 전도사님에게 용기내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요.
알고 있는거라고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놀라웠습니다.
‘다 알고 있네. 그러면 됐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내용이지만,
이런 서술 자체는 불신자도 알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언어가 가득했던 세상에서 오랫동안 자랐습니다.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 또한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 주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이신지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전엔 사람들을 모으고 매주일 밤마다 시간을 정해서
캠과 마이크를 가져다 놓고 사람들에게 주님을 말했습니다.
종교적인 언어가 아니라 주님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서
왜 예수님이 어린양이신지, 용서, 영적전쟁, .. 을 말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모니터앞에서 애타게 기도했던 시간들..
다시 하라면 못할 장면들이지만
그 분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가지고 계신 의문과 답답함을
주님께 여쭤보세요.
그것은 당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기도제목입니다.
내가 경험한 의문과 답답함에 주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의문 앞에서 주님께 질문해 보세요.
“주님의 마음을 구합니다.
주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어떻게 하길 원하시나요?”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주시진 않지만
계속된 질문을 통해 주님은 당신의 마음을 나눠주실거예요.
감동을 따라 노트에 생각나는 말과 문장과 생각을 적어 보세요.
‘내가 할 수 있을까요? ‘, ‘그 이후에 벌어질 어려움’
이런 고민은 나중으로 미뤄도 됩니다.
‘기도하게 되면 아마 주님은 나를 이런식으로 내몰거야.’
순종하지 않으려고 주님의 마음을 구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는 마세요.
우리는 누구도 주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게 만들려는 사단의 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