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건과 상황에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너머에 주님의 뜻이 있다.
나는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불공평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분명하게 이루어 가신다.
불공평하다는 말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문장 같지만
우리에게 전혀 손해볼 것 없는 말이다.
하나님이 공정하시다면
결코 죄인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지 않을테니 말이다.
나는 불공평한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날마다 부끄럽고
날마다 감사한다.
역대기에서 요시야 왕은
유다의 왕들 중에서도 가장 신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호와 보기시게 정직히 행하였으며
조상 다윗의 길로 걸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
이 표현들은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각 왕들의 평가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요시야는 이 표현들을, 말 그대로 별점을
고루 받은 왕이었다. (대하34:2)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과 삶의 궤적을 말하며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섬긴 히스기야의 아들이
므낫세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까지도
우상앞에 태워죽인 인물이었다.
므낫세의 아들은 우상을 섬겼던 아몬이었다.
하나님앞에 범죄하고 우상을 섬긴
므낫세와 아몬의 직계가 요시야였다.
요시야는 무척 어린 나이에
우상의 제단을 산산조각냈고
예배를 회복했다.
그 시작을 생각한다.
그가 왕위에 있을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 제 십이 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대하34:3)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수순이 있다.
오늘 당장 모든 것을 이룰 수 없고
하루는 24시간에 불과하다.
다만, 하나님을 비로소 찾게 되면
그는 어김없이 만나주신다.
내 감정을 넘어, 내 의지를 넘어.
주님 만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