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워커홀릭이었기에 더욱 안식의 전환을
많이 생각한 편이다.
한 예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신앙훈련은
가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교회도 가정도 건강해진다.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을 주일학교,
일주일에 한 번, 한 두 시간에 가능하리라 믿는 것은
농담 같은 믿음이 아닐까?
하지만 그 안식의 중요한 지점은 무엇일까?
안식을 명한 이유는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그 분을 신뢰하는 믿음과 관계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과도하게 형식적인 율법주의를 고수하며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누었다.
예수님은 밀밭 사이를 지나시고
길을 내기 위해 제자들은 밀밭에 길을 만들었다.
바리새인들은 이 행위가 안식일에 저촉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눈여겨 보고 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 죽이는 것” (막2:4)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주님의 계명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판단을 이어간다.
백 번 양보해서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빠져있다면
그저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하게 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지적에 대해
진설병을 먹은 다윗을 예로 들었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았지만
사울왕에 의해 쫓겨 다니는 신세였다.
예수님이 다윗의 이야기를 가지고 온
이유는 무엇인가?
사울왕으로 연상되는 세상은
진짜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
그 분을 알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왕이 오셨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다.
무엇보다 당시 다윗의 처지와
그를 품어준 제사장,
안식일의 규례를 주님의 마음으로
품어준 안식일의 재조명을
바리새인들에게 가르쳐 주려 한 것은 아닐까?
요한복음에는 나사로 사건에서 부터
예수님이 죽음의 위기에 임박했음을 말하고 있지만
마가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죽음에 가까움을 말한다. (막2:6)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자처하신다.
이때문에 오셨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사는 이유,
사람을 만나는 이유,
예배를 드리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