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조금 아픈 아이

#1
성호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우리 성호 몇 살처럼 보여요?”
부로 몇 개월을 더 붙여 말했습니다.
“15개월 정도 되었나요?”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했습니다.
성호는 이제 20개월, 한국 나이로 3살입니다.
이 나이면 제법 의사표현을 하고, 뛰어 놀며 장난칠 때이지만
고작 1.4킬로로 태어난 성호는 얼굴 빼고 모든 곳에 주사를 맞으며
태어난 지 겨우 이틀만에 중환자실에서 심장수술을 했습니다.

그나마 많이 자라서 이제 신생아 모자를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목을 못 가눈채, 엄마만 알 수 있는 표현으로 웃을 뿐입니다.
눈만 껌뻑 거리는 성호를 안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병원에 오면 차라리 편하고 마음이 놓여요.
성호처럼 아픈 아이들을 보며 혼자가 아니란 생각도 들어요.
마음이 편해서인지 병원에 있으면 저도, 아이도 살이 쩌요.
병원에서는 이런 우리를 보고 부럽다는 엄마들도 많아요.

친정 엄마는 응급상황이 생길때마다 안쓰러워서 우시지만,
저는 성호를 일부러 울릴 때도 많아요.
울면 우리 아이의 폐가 좋아질 것 같아서요.
하지만 우리 성호는 워낙 순해서 응애응애 우는 게 아니라 징징 거리는 정도예요.
피를 뽑아도 울지 않아요. 그래서 안 쓰러워요.”

성호는 이제 피를 뽑으면서도 잠들 수 있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달고 있던 주사바늘에 익숙해져서 여기에 면역이라도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호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병 있는 아이’가 아니라 ‘그냥 조금 아픈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조금 아픈 아이라서 조금만 덜 아프면 좋겠다고 소원합니다.
성호가 정상적으로 걷기만 하면 어머니는 사격을 시키고 싶다며 웃습니다.
사격을 하면 귀가 멍한데, 우리 아이는 귀가 잘 안 들려서 집중도 잘 할 수 있을테니
나중에 장애인 올림픽에 보내고 싶다고 합니다.
몇 십 년 뒤에 성호의 목에 걸린 메달을 상상해 봅니다.

“임신 6개월에 제 뱃속에 있던 아기가 안 좋다는 것을 알았어요.
당시 사람들이 아이 지우라고들 말했는데
이 아이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겠어요.
이렇게 예쁜 아이인데.. 내겐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아들입니다.”

– 성호는 백질연화증, 청각장애, 뇌병변장애 1급, 다양한 경기로
그냥 조금 아픈 20개월 사내아이입니다.

#2
무경이의 그림이 완성되면, 나중에 성호도 그림 그릴까 생각합니다.

전시회 당일까지 매일 쪽잠을 자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친정에 가있는 동안 온 집에 발 디딜틈 없이 그림을 널어놓고 그림 그렸습니다.
잠 자다가 깰때마다 일어나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잠들곤 했습니다.
우스갯 소리로 작품명을 수면부족으로 지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시회가 시작되고 나니,
무경이 그림은 겨우 하나인데도 생각보다 진도가 나질 않습니다.

무경이 그림을 어떻게 그릴까 기도하며 고민했습니다.
사진과 그림의 다른 점을 생각하다가 희미하게나마 겨우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의 힘이 사실이라면, 그림의 힘은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품만 할 수 있을 뿐, 아무 표정 없는 무경이 얼굴에 작은 표정을 심어 그려주고 싶습니다.

내가 무경이의 그림을 그리고 경매에 붙여 판매하려는 이유는
판매액을 무경이 보청기 사는데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목적을 명확하게 하려는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보청기는 작게는 400만원, 많게는 천 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꼬맹이의 그림이 작품이 될 수 있다면 내 그림도 작품이 될 수 있겠지만
내 그림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풋내기가 그린 선물에 불과합니다.
내 그림을 선물로 여기면 나는 보다 부담없이 그림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다른 무엇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은 부족하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그렇게 할 뿐 입니다.

한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껏 많은 친구들을 만나왔지만, 내가  그 인생을 책임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부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담감을 서로 함께 나누는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