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드리며 얼마나 기뻤는지
무리중 가장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 즐거움에 함께 했습니다.
예배의 기쁨이 소리가 되어 멀리까지 울려퍼졌습니다.
예배를 형상화할 때 가장 모범적인 답안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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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에 무리가 희생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느12:43)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느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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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회복은 주님의 말씀에서 시작되었으며
또한 자신 뿐 아니라 조상들이?
또한 자신 뿐 아니라 조상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귀기울이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자각하고 회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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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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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잘못했지만 주께서는 성실히 행하셨습니다” (느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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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건강하고 성공적인?
신앙 회복운동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주님을 바라보는 소수로 인해
온 회중은 바른 신앙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총독으로 거주한 지 12년째,
잠시 아닥사스다 왕에게 다녀오는 동안?
문제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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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을 방해했던 도비야에게
제사장 엘리아십은 거룩한 성전의 방을 내주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레위사람들을 돌볼 십일조를 내지 않았고
제사장 엘리아십은 거룩한 성전의 방을 내주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레위사람들을 돌볼 십일조를 내지 않았고
레위 사람들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성전의 직무를 버리고 자기들의 밭으로 가버렸습니다.
성전의 직무를 버리고 자기들의 밭으로 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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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짧은 본문 속에서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한계를 본 때문입니다.
예배로 인해 주님 앞에 기뻐했던 백성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방향과 현실에서 부딪히는 한계들로 인해
백성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범죄했던 선배들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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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을 하며 주님의 구원에 소고치며 감격했지만
모세의 부재앞에서?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수24:15) 라고 말했을 때
온 백성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성경은 사사기의 시작부터
이들의 욕심과 완악함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민낯이어서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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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앞에 회개하고?예배로 인해 감동받을 수 있지만,
현실속에 살아가게 될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권세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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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자정능력이 없습니다
매일 싸우지 않으면?나도 거룩한 성전뜰의 큰 방을
불의한 도비야에게 내어주고 말 것입니다.
도비야에게 성전을 내준 사람이?다른 사람도 아닌,
성전을 지켜야 할 제사장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 또한?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공간,
내 마음을?종종 도비야에게 처소로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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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돌아온 느헤미야는?
이 악한 사실을 알고는?
이 악한 사실을 알고는?
단호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먼저 도비야의 모든 살림을?거룩한 곳에서 내쫓습니다.
그리고 정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책임자로 임명하여
레위 사람들의 직무가 지속되도록 했습니다.
먼저 도비야의 모든 살림을?거룩한 곳에서 내쫓습니다.
그리고 정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책임자로 임명하여
레위 사람들의 직무가 지속되도록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복귀로 공동체는 다시
거룩함을 유지하게 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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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세워둔 믿음직한 책임자가 사라지고 나면,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느헤미야가 떠나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그가 만들어 놓은 건강한 공동체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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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건강한 구조와 형식이 만들어 져도
주님의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형식만 남게 되고 율법주의가 되고 말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속에서도, 유럽의 교회를 보며, 우리 나라의 비어가는 예배당을 보며
위기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역사속에서도, 유럽의 교회를 보며, 우리 나라의 비어가는 예배당을 보며
위기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사람이 부재했을 때 공동체의 미래가 두렵습니다.
건강한 구조뿐 아니라 그것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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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견고한 구조를 만든다고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욕심대로 깨뜨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욕심대로 깨뜨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비록 구조와 형식과 환경이 부족하더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주님이 충분하시기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주님이 충분하시기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한 사람.
주님 바라보는 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