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아가기 힘든 경우가 많다.
고려하고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이혼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물었을 이혼에 대한 문제는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 문제를 지적한 까닭에 세례요한은 참수를 당하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해
창조 원리로, 인간의 본성으로
문제의 참 원인을 찾아 말씀하신다.
모세의 이혼증서 자체에 권위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왜 만들어졌는가를 말한다.
모세는 당시 일방적으로 이혼 당하는 여자들,
그리고 경제적인 힘이 전혀 없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써 이혼증서를 말한다.
마치 고르반처럼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는 믿음의 선언이
도리어 절세의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어린아이)의 것이니라” (막10:14)
어린아이는 철저하게 의존적인 존재이며,
무엇보다 단순하고 계산적이지 않다.
언젠가 소명이가 바다에 나갔을때 일이다.
다시 돌아올 힘을 남겨놓지 않고 노느라
힘을 다 소진해서
바다 한 가운데서 울음이 터진적이 있다.
어른은 누구나 바다에 나간다면
돌아올 힘을 남겨놓지 않은가?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가 내게 한 말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나는 오늘 하루, 아들을 최고로 사랑한다.
내일 아들을 떠나보내도 속상하지 않도록.
주님께 의존해서, 계산하지 않고
나를 던져 그 분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 이와 같지 않을까..
헤롯과 헤로디아의 문제 앞에선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의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