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결국 그는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다.
그저 아들 하나를 주셨을 뿐이지만
주님의 약속을 믿었다.
보지 않고 믿는 것,
마치 의심하던 도마에게
믿음을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400 년이 흘러 가나안을 내다보는
이스라엘에게는 현실이 되었다.
모세 한 사람으로는 이들을 재판할 수 없기에
다스릴만한 지도자들을 세웠다.
재판을 담당할 이들에게 당부한다.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에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
너무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지고 올 것. (신1:17)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당부다.
위대한 선지자였던 사무엘조차
이새의 집에서 다윗의 형들을 보며
그들의 외모를 보고 왕의 면모를 파악하지 않았는가?
사람의 배경을 보지 않는 것,
그 사람의 직업과 집안을 보지 않는 것,
그 사람의 위협과 협박 따위,
나와의 조직도를, 관계를 따지지 않는 것,
본능적으로 이런 항목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반사이익뿐 아니라,
감당해야 할 대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이익과 위협이
더 가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주님과의 거리 문제로 귀결된다.
15 년이 넘도록
특별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 피부로 닿는 두려움이
조금 멀게만 느껴진다.
하나님은 많은 것을 가르치신다.
한없이 가벼운 죄인 중 한 사람인 동시에
날마다 먹이고 기르시는 분,
동시에 시험에 들면
날아가 버릴 겨와 같이
약하디 약한 죄인 한 사람.
그래서 두려워할 것 중 가장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신다.
백성을 돌볼 재판장의 기준,
이 기준을 이스라엘은 자신의 역사에서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날마다 이 기준으로
세상과 통치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돌보신다.
왜냐하면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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