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씨앗은 미리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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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한 사건들이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애굽의 바로와 헤롯왕이
이런 연유로 이스라엘의 남아를 죽였고
유다 여왕 아달랴도 왕의 자손을
다 멸절했다. (왕하11:1)
하지만 유모의 손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왕손 요아스 때문에
아달랴의 통치는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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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신하들에게
사울의 후손이 있는지를 물었다. (삼하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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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은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이였다.
마지막 남아 있는 왕족의 신분이었지만
그의 신분은 도리어
죽음을 부르는 피리소리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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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도망하다가
평생을 걷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었고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숨지 못하고
므비보셋은 절대자의 앞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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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저는 죽은 개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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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므비보셋은 자신이 오랫동안
두려움으로 상상하고 저주한 다윗과
전혀 다른 다윗을 만나게 된다.
자신을 죽은 개라고 부르며 엎드린
므비보셋을 다윗은 자신의 왕자 중
하나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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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로 여겼던 이가
왕의 아들이 되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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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그를 찾은 이유는
오래전 그가 언약했던 사랑을
이행하기 위해,
말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그를 찾았다.
헤세드. 언약적인 사랑.
잔치에 초대 받지못한 막내를
하나님이 부르셔서 기름 부으신 것처럼
자격 없는 원수가 왕의 긍휼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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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은 이후 압살롬의 반역 이후
다윗이 궁정에 귀환했을 때
다시 등장한다.
‘누가 배신자인가?’
시바와 므비보셋의 보고는
상반되었고, 성경은 판단을 유보한다.
하지만 말이 아니라
그의 행색으로 므비보셋은
자신의 진실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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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이 통치하는 새 나라에서
그는 옷 한 번 갈아입지 않고
수염도 깍지 않은 누추함으로
다윗을 그리워했던 한 사람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삼하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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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삼하19:30)
므비보셋의 대답은
현실과 믿음의 간극 사이에
고민하는 마음에
커다란 파장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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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대답이 옳고,
그래서 누가 더 많은 것을 차지하느냐가
므비보셋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진짜 사랑을 받은 자,
갚지 못할 은혜를 경험한 자의 대답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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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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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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