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지인과 함께 오랜시간 고난을 이야기하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로만 살고
주님으로만 의지하고
오직 주님 뜻에만 귀기울이고 살고 싶습니다.
그 길의 끝이 순교라도
주님뜻이라면 오직 가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 이순간도 주님뜻이라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다만, 주님 뜻이 아닐까 봐,?그것이 두렵습니다 .
감사합니다 기도로 평안을 찾겠습니다.”
얼마나 복된 고백인가요?
하지만 여전히 폭풍 가운데 있기에
쉽지 않은 항해입니다.
“폭풍이 휩쓸고 가면 악인은 없어지지만
의인은 영원히 굳게 서 있을 것이다.”(잠10:25)
우리 인생에는 너무 많은 폭풍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 영혼을 뒤흔드는 싸움들이 있습니다.
표면적인 싸움이 느껴지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싸움도 얼마나 치열한지 모릅니다.
내 마음에 격렬하게 번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폭풍이 휩쓸면, 다른 말로 고난앞에 서게 되면
의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고통하게 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피아구분도 무의미합니다.
이 본문에서 성경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것외에는
고난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결과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에 수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저와 나이가 같으신데 다양한 경험을 하셨네요.”
그전까지는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그 경험은 내게 삶의 연륜과 생각의 지경을 넓혀주었습니다.
경험은 내게 어떻게든 유익을 주었지만
만일, ?내게 젊음이 허락된다면,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경험하는 기회를 준다면
확고하게 거절할 것입니다.
살았기에 감사하며 살았지만
고난이 쉬운 사람은 누구도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 그 자체의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난은 분명 사람을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고난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주님께 엎드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3)
고난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라는게 있을까요?
때론 그저 숨죽인듯 눈물로 침상을 띄워야 할때도 있을 것입니다.
고난을 방법론으로 대하다보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한숨뿐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간속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이 있습니다.
이말은 곧 아버지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인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고난 속이지만
주님이 주신 길이라면 기쁘게 가겠습니다.”
“폭풍이 휩쓸고 가면 악인은 없어지지만
의인은 영원히 굳게 서 있을 것이다.”(잠10:25)
이 폭풍이 지나가는 ?동안
주님 바라보기를.
그것이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