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집안의 장남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왔습니다.
이는 임신을 돕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진귀한 식물입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어머니께 가져갔습니다.
르우벤의 어머니는 레아입니다.
레아에게는 자신이 직접 낳은 아이만도 네 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남편인 야곱은 레아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레아의 동생인 라헬만을 사랑합니다.
레아는 동생처럼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어머니의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오늘 르우벤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선물 하나를 가져다가 위로합니다.
하지만 라헬은 이마저도 욕심을 냅니다.
비록 자식은 없었지만,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그는
르우벤이 가져다 준 합환채까지 요구했습니다.
레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남편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서 아들의 합환채까지 빼앗느냐.” (창30:15)
이에 라헬은 남편인 야곱을 가지고 모종의 거래를 하게 됩니다.
자신이 합환채를 갖는 대신, 오늘 밤 야곱과 동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르우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가져다 준 진귀한 선물이 작은 어머니에게 거래되어 넘어갈 때 가졌을 분노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슬픔과 동정
르우벤의 마음에 오늘 일은 평생 씻기지 않을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후로 레아는 몇 명의 자식을 더 생산하게 되고, 결국 라헬도 꿈꾸었던 자식 요셉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자라났던 아이들은 당연히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살아 갈 것입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작은 어머니 라헬이 죽은 후,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까지 하게 됩니다.(창35:22)
아버지지만, 부정하고 싶었던 대상입니다.
형제들이 장성한 후, 분노는 더욱 구체적인 표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분노의 대상이었던 라헬의 아이 요셉에게로 향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라헬만을 사랑했던 그 사랑을 요셉에게 쏟습니다.
결국 형제들이 동생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리기에 이릅니다.
긴 시간이 흘러 요셉은 총리대신이 됩니다.
가나안에 가뭄이 들어서 곡식을 구하러 형제들은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러 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야곱은 잃어버린 요셉 대신 그의 동생 베냐민에게 자신의 사랑을 쏟습니다.
긴 시간동안 세월이 흘러도 야곱은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시간만 흘렀다 뿐이지, 대상만 변했을 뿐 변한 것은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시간을 보냈을까요?
야곱은 전혀 변한 것이 없지만, 이 깨어지고 상처많은 가정에 하나 둘 변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다는 또 다른 분노의 대상 베냐민을 대신해서 인질이 되길 자청합니다.
이런 변화 때문에 요셉은 형제들 앞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하게 됩니다. (창45:2)
아주 긴 시간이 흘러서야, 이 가정은 서로를 끌어안게 되었습니다.
오늘 큐티말씀을 묵상하며, 빈 여백에 적어 놓은 글입니다.
‘지금 당사자들은 알지 못하지만
레아와 라헬의 유치하고 치열한 경쟁구도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열어가신다.’
라헬이 낳은 아이를 통해, 형제들이 미워하는 한 아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위기 가운데서 살아나게 되었으며
레아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제사드리는 레위가 태어났으며,
유다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왕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이라 부르는,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실 구원자가 태어났습니다.
르우벤의 아픔이 실제적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더욱 실제적입니다.
그저 내 눈에 괜찮아 보이는 것만이, 좋아 보이는 것만이 주님의 일하심이 아닙니다.
모든 불합리와 어리석음과 경쟁과 아픔 속에서도
주님은 당신의 뜻을 오늘도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것이 내가 아픔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