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한 여인이 기브아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윤간을 당하고
그로 인해 보복전쟁을 벌이게 된다.
전쟁으로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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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갯짓은 어디인가?
이 이야기는 행음한 첩이
넉 달 동안 친정에 간 일로 시작된다. (삿19:2)
과연 범죄 한 여인의 죽음을 통해
다 범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사사기의 의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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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번역을 보면
그 첩을 행음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무슨 일로 화가 났던 여자가
친정 집으로 돌아가 넉 달 동안
머물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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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음하다고 쓰인
히브리어’자나’는
화내다. 증오하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어서 70인 역에는
이를 화를 냈다고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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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남편이 친정으로
데리러 온 전개를 보면
여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남편의 잘못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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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아에서 머문 집의 노인은
성읍의 불량배들에게
자신의 딸을 내주려 하고,
남편은 대신 자신의 첩을 내주게 된다.
여인은 밤새 윤간당했지만
남편은 아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심지어 그의 죽음 조차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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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른 아내에게
남편이 던진 무심한 말.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삿19:28)
그녀의 죽음 이후 생겨난 잔인한 전쟁,
그 전쟁의 결과를 처리하기 위해
다시 실로의 여자들이 희생당한다. (삿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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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는 하나님 없이 자신의 뜻대로
결정해 나가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의 폭력과 비인격,
아픔과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다 확대하면
힘을 가진 자의 폭력,
권위를 가진 자의 학대까지 고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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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이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면
인간은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까?
자신의 뜻을 이루어 줄 수 있다면
어떤 신이어도
어떤 희생을 치러내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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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의 제목처럼
잘되는 나. 를 끊임없이
꿈꾸는 시대 속에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앞에 저항선을
긋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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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다 말씀하시고
나를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나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왜 자꾸만 저항선에 부딪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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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가리키는 것은
사람이 신이 되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담의 범죄도,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도
심지어 사단도 모두 비슷한 꿈을 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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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정말 신이 되고, 하나님이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성육신을, 피조물의 반란을, 죽기까지 낮아짐을,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겸손을,
인류의 모든 저주를 책임질 수 있을까?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고
흉내 내지만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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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가까이 보면
내 소견이 다 옳은 것 같아 보이지만
긴 시간 속에서는 하나님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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