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군대에서 처음 랩으로
찬양 부르는 것을 듣게 되었다.
얼마나 이질적이었는지 모른다.
자라면서 생각했던 거룩함, 고상함, 경건함의
모양이 깨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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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함께 동행하며
PK 리더였던 광우와 친구가 되었다.
긴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예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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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몸을 사용해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한
여러 모양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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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당시의 신앙 고백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열매로 고백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이었던 것 같다.(엡5:18-19)
서로가 이 고백에 화답하며 불렀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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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특히 찬양 시간에
손을 하늘로 향하거나, 가슴에 얹는다.
나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지만
마치 내 앞에 신랑 되신 주님만 계셔서,
그에게 내 마음을 내어주려는 갈급함을
드리려 한다.
종교개혁 이후, 설교위주의 말씀이
중심이 된 예배 형식이 굳어졌지만
실제 예배의 모습은 지금의 모양이
아니었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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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것이 많아 탄식한다.
경제적인 빈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다음 세대의 영적인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그 변화를 눈으로 볼때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가끔 멍하게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주님은 이 시간 속에도
여전히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는다.
내가 실망을 느꼈다고
주님의 계획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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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다음 세대 아이들이 새로운 시대를 경험하며
그들 나름의 언어를 배우는 시기는 아닐까?
내가 경험한 시대의 언어로 묶지 않으려 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은
이제 그들의 시대적 언어에 맞게 불려져야 할 것이다.
마음의 문제, 특히 믿음의 문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주님께 탄식하며 드릴 믿음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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