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지만
이 말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대상이라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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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기능적 대상의
의미 차이는 거리가 멀다.
악한 자들은 백성을 기능적
대상으로 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부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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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며 지혜롭다고 여기는
그들을 향해 성경은
악한 자이며, 무지한 자라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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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관점과 다르다.
그는 시작에 계시며 동시에
시간의 끝에도 동일하시다.
(그런 의미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시간 내서 한 번 보고 싶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상의 관점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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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들을 무지하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시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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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의로운 사람은 칭의에
관한 말씀과 연결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구원의 개념을
보다 넓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지만
구약의 의로움에 대한 용례를 보면
고아와 과부를, 가난한 이를, 정직을
용서와 원수갚음을, 선지자들의 외침을
폭력을, 무죄한 자의 피를 언급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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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사람의 위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판단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로 회귀하게 되지만
예수 믿으면 천당이라는 공식으로
이 문제를 건너뛰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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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악한 자들은 그들의 상대를
이용하려 하지만,
“악한 자들은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늘 좌절시키지만
여호와는 가난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시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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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한 자의 편이 아니라
여호와의 편에 서야 한다.
여호와여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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