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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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꿈이라
여기면서도 형들은
그 꿈을 좌초시키기 위해
요셉을 죽이기로 작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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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창37:20)
그렇게 뱉은 말은
형들을 악한 짐승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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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은 끊임없이 요셉과 자신을
자신의 처지를 비교했다.
요셉이 없다면, 비교 대상이 사라지면
더러운 모멸감도 열등감도
느끼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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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창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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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소유한 자를
제거하는 것으로 실패할 것이 뻔한 꿈이
한참의 시간이 흘러 역전된다.
다 잘될 거야. 이런 말들은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과 약속은 다르다.
그리고 약속을 보증한 이가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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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이
시간이 흘러 성취된다.
반 고흐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거나
지금처럼 사람들이 환호하는
장면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내일을. 약속의 성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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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갈며 꿈을 증오하던 형들은
도리어 그 꿈의 수혜를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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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내가 악한 짐승이 될 수 있고
내가 증오하거나 힘들어하는
대상으로부터
다시 숨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 내일을, 약속의 성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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